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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World & Idea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12일(水)
‘기성정치 틀 붕괴’ 佛대선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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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차기 대통령 선출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은 밑바닥이고 집권당 후보는 당선권 밖에 있으며, 1위로 달리던 급진 성향의 대선 후보에 대한 반대 세력 결집으로 ‘중도’후보가 급부상하여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 또, 누가 대선에 승리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기에 주변 국가들이 대선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라.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대선 상황이다. 오는 23일이 대선 1차 투표일인데, 50% 이상 득표자가 없을 땐 1·2위 후보 2명을 놓고 다음 달 7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

2012년 5월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51.7% 득표로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말 4%까지 떨어졌다. 이는 높은 청년실업률과 낮은 경제성장률, 그리고 사회복지 구조조정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 탓이다. 집권 사회당은 브누아 아몽(50) 전 교육부 장관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으나, 한 자릿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한 채 5위 이하로 처져 있다. 그러나 힘 못 쓰고 있긴 제1야당인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프랑수아 피용(63) 공화당 후보는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급진 좌익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66) 좌파당 후보와 3∼4위를 다투고 있다. 프랑스는 형식상 다당제이지만, 드골주의 기반의 공화당과 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당, 양당을 기본 축으로 정당정치가 이뤄져 왔다. 그런데 전통적 좌·우 양대 정당이 공동 몰락하고 있다.

현재 1위는 ‘프랑스판 트럼프’로 불리는 마린 르펜(49) 국민전선 후보. 국민전선은 극우로 분류되는데, 외교에서는 반미·반유럽연합(EU)·친러 노선을, 경제에서는 사회당 정부보다 더 국가주의적이고 보호무역주의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한 올랑드 정부의 노동법 개혁을 ‘사회적 억압’이라고 맹공격하는 등 사회복지 문제에서 급진 좌파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정책뿐만이 아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몰락한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듯이, 사회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산업 도시 노동자들이 르펜을 지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르펜은 자신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을 포함한 일부 극단적 반유대주의자를 당에서 축출하는 등 ‘탈악마화(dediabolisation) 노선’을 통해 온건 유권자에게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으나, 비토 세력이 가장 많다.

반(反)르펜 세력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에마뉘엘 마크롱(40) 전 경제부 장관이다. 마크롱은 지난해 4월 정당이라기보다는 시민단체에 가까운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전진(앙 마르슈)’을 조직해 기성 정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롱은 사회당 출신이지만 친시장론자로서 과도한 사회복지의 대폭 축소를 주장하며 ‘중도’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제3의 길’과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신(新)민주당 노선’과 비유되고 있다. 마크롱은 15세에 24세 연상인 자신의 학교 선생님과 만나 18세부터 동거했다가 2007년에 결혼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이번 프랑스 대선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프랑스가 EU를 탈퇴하는 ‘프렉시트(Frexit)’ 문제다. 그러잖아도 브렉시트로 휘청이고 있는데, 프랑스마저 떠나면 EU는 붕괴하거나 ‘독일연합’으로 전락하게 된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유럽에선 국민국가(nation state)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것으로 취급됐다. 심지어 ‘유럽합중국’이 미합중국을 능가할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브뤼셀 관료주의’에 대한 국민주권론적 비판과 ‘글로벌 엘리트’에 대한 소외 계층의 반발이 뒤섞이면서, ‘세계화에 대한 국민국가의 역습’이 일어나고 있다. 극우와 극좌로 분류되는 르펜과 멜랑숑 모두 탈(脫)EU를 지향한다. 두 노선이 정면 대립하는 것은 이슬람계 이민에 대한 태도다. 르펜은 이슬람계 이민에 결사반대하나, 프랑스 급진좌파는 무슬림계 이민자들을 소외되고 억압된 신(新)프롤레타리아로서 변혁의 동반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1차 투표에서 50%를 넘는 후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르펜과 마크롱이 결선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비토 세력이 적은 마크롱이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기존의 좌·우 이념의 틀로는 분석하기 어려운 현상도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되든 6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다수파를 차지하지 못하면 안개 정국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점점 까다로워지고 복잡해지는 4차 산업혁명시대 유권자 기대를 충족시킬 다수파를 형성하기엔 기존의 정당이나 이념으론 역부족이란 사실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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