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브렉시트(왼쪽)는 유럽을 갈라놓았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가운데)은 세계를 긴장하게 했다. 대선을 앞둔 프랑스(오른쪽)에서도 극우파 바람이 불면서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폭정 /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시민 쿠데타 / 엘리사 레위스·로맹 슬리틴 지음 임상훈 옮김 / 아르테
오늘날 민주주의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가.
20세기 초 민주주의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출현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권위주의와 독재, 선전·선동이 난무하고 전 세계는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법도, 도덕도, 정의도 소용없는 혼돈이었다. 독일의 히틀러는 끔찍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했고, 억압과 폭력에 순응한 세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20세기 비극의 역사는 언제라도 사회가 분열될 수 있고, 너무도 쉽게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수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손에 총을 쥔 채 죽음의 구덩이에 서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로부터 다시 1세기가 흐른 현재, 예상치 못한 ‘정치적 이변’들이 잇따르면서 각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시작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였다. 2016년 6월 23일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를 51.9%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꿈꾸던 유럽의 공조체제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같은 해 11월 8일 미국에서는 브렉시트 못지않게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전해졌다.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설마 했던 예상을 깨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민자를 내쫓고 성희롱적 행태를 서슴지 않으며 인기에 영합하는 국수주의 발언을 일삼던 ‘악동’ 같은 인물이 세계 최강국의 리더에 오른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세계는 20세기의 악몽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신고립주의, 자국중심주의, 극우주의의 최면에 걸린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우려를 금치 못했다.
‘폭정’과 ‘시민 쿠데타’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정치 무관심과 분노·혐오, 포퓰리즘에 빠진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혁신은 가능한지, 올바른 대안은 없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공통으로 지적하는 핵심은 시민의 역할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저절로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자세에 머물렀던 시민이 이제는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사회와 제도의 건설자이자, 역사의 개척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폭정’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폭압을 예로 든다. 그들도 처음부터 독재자는 아니었으며 민주적 절차를 가장한 선거로 권력을 잡았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독재자들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권력을 장악한 것은 새로운 상황에 대해 비판 없이 본능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예측 복종’,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가 스스로 체제를 지킬 것이라는 그릇된 판단 탓이었다.
1938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총리의 굴복과 오스트리아 유대인의 순응적 복종으로 인해 힘들이지 않고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수 있었다. 히틀러가 시민선거를 통해 나치 정부를 수립했을 때도 독일의 유대인들은 제도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시민 쿠데타’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한 축인 대의정치(代議政治)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선거에 의한 대의 체제를 민주주의의 최종 형태로 생각했지만 그건 신화에 불과했다. 대의정치는 과거 ‘세습 귀족주의’가 ‘선출 귀족주의’로 바뀌었을 뿐이다. 더구나 오늘날에 와서는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해 곳곳에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폭정’이 20세기 비극을 예로 들었다면 ‘시민 쿠데타’는 프랑스가 현재 직면한 정치적 위기를 곧바로 보여준다. 프랑스는 23일 대통령선거 1차 투표를 앞둔 가운데 극우파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다. 중도 좌우파인 사회당과 공화당이 다수당을 구성해온 상황에서 극우정당이 이렇게 큰 지지를 받은 적은 없었다. 시스템이 잘 가동되고 있다지만 정작 많은 시민은 주권 행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극우 포퓰리즘은 바로 이런 국민적 불만족 사이를 파고들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민이 주도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민주주의의 실험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지원할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의 저항을 얕봐서도 안 된다. 새로운 규범이 자리 잡도록 정치인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은 역시 우리 자신이다. 정치 개혁이 오로지 정치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확신과 끈기로 혁신을 시도하고 실현해야 한다.
5월 9일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이야말로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보여줄 때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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