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프로스포츠의 敵 낙하산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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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체육부장

최근 프로야구 단체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오는 6월 말 임기가 끝나는 김영기 총재의 연임을 결정했다. 경기인 출신이자 KBL 출범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김 총재는 이로써 2020년까지 KBL을 이끌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김 총재의 연임은 일종의 편법이다. 김 총재가 연임을 수용하되, 현 임기 이전에라도 물러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결정을 한 데엔 물론 이유가 있다. KBL과 10개 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총재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농구나 스포츠와 관계없는 인사, 특히 정치권에서 차기 총재를 노리고 접근하는 사례가 늘었다. 임기 말이면 항상 되풀이되는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래서 서둘러 김 총재의 연임을 확정, 발표했다. 다음 총재가 선출됐으니 KBL 총재직에 눈길을 두지 말라는 얘기다.

1996년 출범한 KBL에서 회원사(구단) 관계자가 수장을 맡은 건 초대 총재였던 윤세영 SBS 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번엔 KBL과 10개 구단, 그리고 김 총재가 ‘외풍’을 차단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김 총재는 빠르면 오는 6월 말 임기 종료에 앞서 구단주 중 한 명을 새로운 총재로 영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지난달엔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로 선임됐다. 조 대표이사는 대한항공 남자 배구단의 구단주다. KOVO는 ‘정치인을 배제하고 연맹 회원사 구단주들이 총재를 맡는다’는 2014년 4월 이사회의 의결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로써 4대 구기 프로스포츠의 수장은 모두 경기인, 회원사 관계자로 채워지게 됐다. 최근 KBL과 KOVO가 ‘구단주 총재’를 강조한 건 폐쇄적으로 조직을 이끌겠다는 게 아니라, 앞서 지적했듯이 외풍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외풍을 완전하게 차단한 뒤엔 전문 경영인, 또는 스포츠인의 총재 취임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로스포츠는 경기력이 비약적으로 향상하고,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출범했다. 그러나 취지와는 다르게 권력에 휘둘려왔다. 청와대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낙점하는 일까지 있었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 출신 총재, 국회의원 총재, 관료 출신 총재 등 ‘낙하산’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요직으로 옮기기 위한 징검다리,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프로스포츠 총재직이 활용됐고 이로 인해 프로스포츠의 자율성은 훼손됐다. 최근까지도 그랬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 한창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프로와 아마 경기단체의 통합을 강제적으로 추진했다. 지난해 10월 치러졌던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선 문체부가 특정 후보를 민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체육단체 임원, 선수와 지도자, 동호인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은 정부, 문체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기흥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던 이기흥 체육회장의 당선은 더는 정부,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체육계의 민심을 대변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의 스포츠 정책에 체육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체육계가 가장 원하는 건 자율의 영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j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