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대통령의 公費와 私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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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미국의 백악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통령이 거주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먹는 식비는 물론 치약, 비누, 화장실 휴지 같은 생필품은 모두 대통령이 지급 받는 4억5000만 원 정도 되는 연봉에서 부담한다. 가족 살림을 도와주는 도우미, 웨이터 등의 월급도 대통령이 지불한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이렇게 청구되는 금액이 많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는 후문도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의 경우도 냉장고에 국무부 마크가 찍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국무부 마크가 있는 것은 철저히 공적인 용도로만 사용한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냉장고에 있는 음식만 먹을 수 있고 개인 용도로 공관 차를 사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누군가와 식사를 하면 당연히 판공비나 특수활동비와 같은 정부 예산에서 지급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공사(公私) 구분 없이 모두 나랏돈으로 지불됐는데, 이젠 많이 달라질 조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 개선책을 지시하면서 앞으로 사적인 영역에 대한 비용은 대통령 월급에서 부담하겠다고 선언했다. 기획예산처 출신인 이정도 총무비서관이 모든 사적 비용을 추정해 급여에서 공제하고 지급할 계획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쓰는 모든 비용은 청와대가 부담해 왔다. 대통령과 가족이 쓰는 생활용품에서부터 식비, 심지어 ‘퍼스트 도그(dog)’ 사료비도 부담해 왔기 때문에 대통령의 2억 원 조금 넘는 연봉은 쓸 일이 없어 고스란히 매년 재산 신고 때 증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비선 실세’ 최순실 씨는 매주 일요일 청와대 관저에 들어가 조리장에게 김밥을 말아 달라고 해서 가져갔다고 하는데 이것도 엄격히 얘기하면 국고 유용이다.

문 대통령이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행동을 보이면 우선 공관에서 생활하는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외교·국방장관들도 따를 수밖에 없다. 외부 인사를 초청할 때 학교 동창이나 지인들을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지도 고민스러울 것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공직자들이 식사 비용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제 더 깐깐하게 챙겨봐야 할 때가 됐다. 한편으로 인심이 각박해질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회 전체가 더 투명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