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27일 전북 고창군 심원면 도천리 담암마을 공성일 씨의 ‘공가 가구’ 공방에서 공 씨 부부가 목공예 체험을 위해 찾아온 중학생들에게 목재 다루는 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전북 고창군 ‘담바우 마을’ 공성일·심상숙 부부 귀농 성공스토리
집과 일터, 이웃.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 요소다. 어느 땅, 어느 집에서 살 것인지, 일거리는 뭐가 좋을지, 이웃 주민들과 흉허물없이 잘 지낼 수 있을지는 귀농에 앞서 절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국내 귀농·귀촌 1번지로 꼽히는 전북 고창군 심원면 도천리 담암마을. 일명 ‘담바우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성공적인 귀농인으로 꼽히는 공성일(55)·심상숙(53) 씨 부부가 지난 2013년 11월 둥지를 튼 동네다. 5월 27일 만난 공 씨 부부는 “마을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웃 주민들과 담벼락 없이 사는 방법을 빨리 터득할수록 좋다”며 귀농을 결심한 계기와 그간의 농촌 생활 등을 여과 없이 털어놨다.
공 씨 부부가 사는 곳은 천년 고찰 선운사의 비밀을 간직한 도솔암의 뒷산 너머 담바우 마을이다. 창고 안에서 5~6명의 아이들과 나무판을 자르고 다듬고 끼워 맞추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가 일하는 가구 공방이다. 주민이라고 해 봐야 60여 명에 불과한 이 마을에서 가구 공방으로 연 1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다.
‘시골 가구 공방에서 어떻게 1억 원을 버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원목 싱크대와 식탁, 붙박이장, 신발장, 거실장까지 주문 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들 부부는 목공예 체험장과 가구 제작 체험교실도 운영한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돼 ‘손재주’만 있으면 어디든 판로가 확보되는 시대다.
공 씨는 이곳에 4년 전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텃밭을 겸한 잔디밭으로 사용하는 2640㎡(800여 평)를 당시 3000여 만 원을 주고 샀다. 선운산에서 내려다본 동네가 너무 좋아 무작정 마을 이장을 찾아가 땅을 매입했다. 유럽식 2층 가옥, 커다란 공방 창고, 앞마당 넝쿨 장미를 휘감은 터널형 햇빛 가림막까지 직접 만들었다. 집 짓는 데 모두 2억 원쯤 들었다. 공 씨는 불과 5~6년 전만 해도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가구공장을 경영했다.
“8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연 매출 100억 원을 훌쩍 넘기는 대형 가구 공장을 운영할 때까지만 해도 이처럼 시골 생활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실 공 씨는 매일 아침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하는 환자다. 심장 질환으로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뇌에도 이상 증세가 생겨 응급조치를 받았다. 당뇨병도 안고 있다. 몸에 병환이 찾아올 무렵 설상가상으로 중국 공장 사업도 비틀거렸다. 베이징(北京)올림픽을 치른 중국에 변화의 바람이 불며 외국 기업인 공 씨의 공장에도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가 귀농을 결심한 계기다. 당시 공 씨는 ‘건강 제일’을 외치며 귀국을 결정했고 고창 땅을 찾아 들어왔다. 농촌 생활 4년 만에 지금은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중국에서 공장을 경영한 12년 동안 건강까지 잃었던 공 씨의 일상은 ‘돈’보다 ‘건강’이 최우선이다.
“규칙적인 생활, 여유 있고 즐거운 삶을 만들어 가며 자연을 만끽하자.”
그는 주말마다 선운사 도솔암까지 걸으며 맑은 공기에 웰빙식으로 알려진 절밥까지 얻어먹고 내려온다. 야산에서 뜯은 취나물이나 두릅을 먹으면 비타민제를 따로 섭취할 필요가 없다. 공 씨는 “농촌에서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웰빙식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며 “가까운 갯벌에 나가면 바닷바람에 가슴이 후련해지고 덤으로 바지락도 캘 수 있다”고 전했다.
그의 고향은 인천 송도다. 고창과의 인연도 바로 그 ‘바다’다. 공 씨는 “동네를 들어오는데 바다 갯내음에 어린 시절 고향 송도가 생각나 맘이 확 끌렸다”며 운명처럼 찾아든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공 씨는 귀농할 집터를 찾았지만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평생 해온 가구업, 특히 원목 가구의 판로는 자신이 있었다. 소품 가구라 다루기도 쉽고 인기도 높았다. 공방을 여니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부인 심 씨는 “농촌 생활 4년 만에 서울 친구들이 찾아올 만큼 기반을 잡았으니 ‘성공’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집과 일터는 발품을 들인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된 일화는 독특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이웃 주민들과 대화도 없었어요. 낯선 이방인에 대한 주민들의 경계심이 만만찮았습니다.”
공 씨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창 집을 짓는 와중에도 식사 시간에 맞춰 이웃집을 찾았다. 밥 한술 권하는 게 시골 정서라는 점을 염두에 둔 방문이었다.
몸을 한껏 낮춘 공 씨는 “배불리 먹고 대화도 나누며, 목수 장비를 챙겨 들고 집을 고쳐 주러 다녔더니 이웃들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 수익 사업도 펼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는 마을공방사업으로 목공예 제작 기술을 전수해 주민들이 기념품을 만들고 복분자와 블루베리 등 농·특산물도 함께 전시·판매하는 지역기업 ‘담바우 마을 공방’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과 수익 사업까지 진행하며 ‘농촌 대안 공동체’로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집과 일터에 이웃 공동체까지 껴안으며 나름대로 귀농생활에 익숙해졌지만 가끔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거실에 설치된 노래방 기계가 한몫한다. 공 씨는 “심원면 소재지에 나가면 웬만한 것은 다 있는데 노래방이 없어 아예 노래방 기계를 들여놨다”며 “이웃이나 외지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술 한잔에 흥에 겨워 노래 한 수 부르면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로 급반전된다”고 말했다.
집안 거실에서 노을빛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공 씨는 2층 진열장의 도자기류와 한지공예품들을 내보이며 ‘가족전시실’ 계획도 밝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각과 도자기를 전공한 딸 보람(27) 씨의 작품과 부인 심 씨의 한지(韓紙)공예와 실매듭 작품 200~300점이 진열돼 있다. 국내 유명 도자기 작품전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보람 씨의 도자기 작품에 공 씨의 가구 공방 목공예 작품까지 가세할 경우 주변 관광지를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그는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4년 살아온 동네지만 40년 이웃처럼 흉허물없이 지내고 있다”며 “다양한 직업군이 모여 살면 농촌만큼 살기 좋은 데가 없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고창 = 글·사진 박팔령 기자 park8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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