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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 게재 일자 : 2017년 06월 19일(月)
술값 내준 여성에게 詩로 답례한 기형도
“손을 내미십시오 / 저는 언제나 당신 배경에…”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기형도(1960∼1989)
- 성석제 동생, 미발표 詩 공개

20대 초반의 풋풋함 드러나
기형도문학관에 기증 예정


요절한 천재시인 기형도(1960∼1989)가 20대 초반에 썼던 미공개 연시(戀詩) 1편이 처음 공개됐다. 이 시는 오는 10∼11월 경기 광명시에 설립될 기형도문학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기 시인과 문학회 활동을 함께했던 박인옥(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장) 시인은 18일 “문학회 모임에 참여했던 문우의 여동생이 갖고 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이 알려진 것은, 기자 출신의 작가로 현재 캐나다에 거주 중인 성우제 씨가 지난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하면서부터다. 기 시인이 경기 안양에서 단기사병(방위병)으로 근무할 당시인 1982년, 문학모임인 수리문학회의 한 여성 회원에게 써준 서정시다.

▲  미공개 연시(戀詩)
“당신의 두 눈에/ 나지막한 등불이 켜지는/ 밤이면/ (…)/ 손을 내미십시오/ 저는 언제나 당신 배경에/ 손을 뻗치면 닿을/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읍니다.”

단정하고 부드러운 육필에서 따뜻한 정감이 풍긴다. 문학청년다운 순수함과 풋풋함이 그윽하게 배어 있다.

성우제 씨는 소설가 성석제 씨의 동생이다. 성석제 씨는 기 시인 생전에 친분이 깊었던 연세대 동문 친구다. 성우제 씨는 고교 시절부터 자신의 집을 드나들던 기 시인을 ‘형’이라 불렀다고 한다.

성우제 씨에 따르면 기 시인은 안양에서 수리문학회 활동에 푹 빠져 있었다. 박인옥·홍순창·유재복 등 문우들과 함께 다방과 헌책방 등을 전전하며 습작하고 시낭송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점에서 모임을 하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여성 회원 중 한 명이 술값을 대신 내줬다. 기 시인은 감사의 뜻으로 즉석에서 연시를 선물했다. 모두 3편을 써 줬는데 이번에 공개된 것은 그중 하나다.

성우제 씨는 15일엔 연시를 받은 여성 회원의 일기도 공개했다. 연시에 대한 답글의 성격이다. 여성 회원은 “전철역 부근 선술집에 앉아 쭈그러진 냄비에 라면을 먹었다. (…) 그의 24살의 눈을 기억한다”고 적었다.

연시는 여성 회원이 그 후로 30여 년 동안 간직하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여성 회원의 일기는 박 시인이 입수해 성우제 씨에게 전달했다. 블로그에 문학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오던 성우제 씨는 박 시인을 대신해 기 시인의 새로운 시를 밖으로 알렸다. 박 시인은 “그 여성 회원은 이제 50대 중반의 평범한 주부로,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하면서 공개한 것으로 안다”면서 “연시는 경기 광명시에 세워지고 있는 기형도문학관에 기증해 관람 자료로 활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 시인은 대학 재학 시절 ‘연세문학회’에서 문학의 꿈을 키웠다. 대학 졸업 후 신문 기자로 일하며 시작(詩作) 활동을 하다가 1989년 29세의 나이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인 ‘안개’ ‘빈집’ ‘질투는 나의 힘’ 등이 실린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윤동주처럼 ‘요절’이라는 아우라가 입혀지면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지난 10일 창작집단 상상두목에 의해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는 제목의 총체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광명시는 기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총 공사비 29억5000만 원을 들여 소하동 산144번지에 문화공원과 문학관 건립 공사를 시작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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