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門의 디자인’ 이유 있는 변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쏘나타(LF)에 기존 헥사고날 그릴이 적용된 모습(사진 왼쪽)과 부분변경 이후 새로운 패밀리 룩인 캐스케이딩 그릴이 적용된 모습(오른쪽).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9월 출시한 3세대 신형 i30는 개선된 주행 성능을 앞세워 유럽 등 해외시장에서 주목받지만 해치백의 무덤으로 불리는 국내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외관 디자인 측면에서 신형 i30는 남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현대차가 2011년 아반떼(MD)를 시작으로 대표 ‘패밀리 룩(family look)’으로 삼아왔던 헥사고날 그릴 대신 캐스케이딩 그릴을 최초 적용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후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 코나 등 완전 신차는 물론 쏘나타 뉴 라이즈 등으로 캐스케이딩 그릴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에서 패밀리 룩이란 한 브랜드의 서로 다른 모델을 아우르는 공통된 디자인 특징 또는 정체성을 일컫는다. 메르세데스-벤츠 세 꼭지별, BMW 키드니(신장) 그릴 등이 대표 패밀리 룩이다. 자동차업체들의 기술, 디자인이 평준화되면서 각 브랜드의 개성을 보여주는 패밀리 룩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업체들은 패밀리룩을 통해 저마다의 차이를 드러내고 소비자 역시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밀리 룩은 한번 정해지면 오랜 기간 유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키드니 그릴의 경우 1931년 일(Ihle) 형제에 의해 최초로 시험 도입되고 1933년 신형 303시리즈에 부착된 이후 80년 이상 BMW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이어져 왔다. BMW 외에도 역사가 오랜 브랜드의 경우 수십 년 이상 고수해 온 패밀리룩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디자인 철학이 변하고 소비자 기호 역시 변화하면서 일부 브랜드의 경우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차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현대차의 첫 패밀리룩 헥사고날 그릴은 자연계에서 가장 안정적 구조로 꼽히는 육각형 모양을 채택해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역동적 느낌을 전달했다. 하지만 아우디를 비롯해 포드, 마쓰다, 스바루 등 여러 브랜드가 비슷한 형태의 육각형 그릴을 사용하면서 차별성 있는 디자인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고심 끝에 용광로에서 흘러내리는 쇳물의 흐름과 도자기의 곡선에서 영감을 받아 헥사고날 그릴의 안정감을 계승하면서도 세련미를 더한 캐스케이딩 그릴을 완성했다.

렉서스 스핀들 그릴 역시 과감하게 패밀리 룩을 변화시킨 대표 사례다. 과거 렉서스는 높은 내구성, 승차감 등을 인정받았지만 디자인은 밋밋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좋은 디자인 대신 한 번 보면 기억에 남는 인상적 디자인을 택하기로 한 렉서스는 2011년 역사다리꼴 상부 그릴과 여덟 팔(八)로 펼쳐진 하부 그릴을 일체화한 스핀들 그릴을 선보였다. 이후 렉서스는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평까지 받는 스핀들 그릴을 밀어붙여 ES, RX 등은 상하부 크기를 비슷하게 하고 IS, GS 등 역동적 주행을 강조하는 모델의 경우 하단부 그릴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확대했다.

볼보 역시 최근 패밀리 룩에 변화를 준 브랜드다. XC90 이후 개발된 신차에 알파벳 ‘T’자를 옆으로 눕힌 모양의 주간주행등을 적용해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 이름을 딴 토르의 망치로 명명하고 새 패밀리 룩으로 강조하고 있다. 르노삼성 역시 2010년 이후 단순함, 감각적, 따뜻함 등 3가지 디자인 요소를 기반으로 ‘V’자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ㄷ’자 형태 주간전조등 등을 새 패밀리 룩으로 강조하고 있다.

확고한 패밀리 룩을 구축한 브랜드 역시 디자인 유행이나 차량 특성 등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준다. 엠블럼 세 꼭지별이 대표 상징인 벤츠의 경우 중후함을 강조하는 세부차종(트림)에는 엠블럼을 보닛 끝에 세우고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모델은 라디에이터 그릴에 삽입한다. BMW도 시대 변화에 따라 키드니 그릴을 좌우로 늘리기도 하고 코로나링으로 불리는 헤드램프 디자인을 시대와 모델에 따라 약간씩 바꿔왔다. 세븐 슬롯으로 불리는 7개 공기흡입구를 패밀리 룩으로 삼은 지프는 최근 수직 방향 길이를 줄이고 날카로운 모양의 헤드램프로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국산차 중에서는 호랑이코 그릴을 대표 패밀리 룩으로 가진 기아차가 신형 K7에서 음각 라디에이터 그릴을 채택해 변주를 줬다. 쉐보레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위, 아래로 나눈 듀얼 포트 그릴, 쌍용차는 날개 모양 숄더윙 그릴을 패밀리 룩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