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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22일(火)
生家이어 묘역에 ‘조선족 윤동주’… 항일역사 빼앗는 동북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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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 (5) 윤동주, 송몽규, 이육사의 기억 전승


◇ 다시 북간도를 찾아

지난 7월 말 다시 북간도를 찾았다. 나로서는 벌써 일곱 번째다. 이번에는 한 재단에서 주최한 대학생 동북아대장정의 지도교수로 동행한 일정이었다. 첫날 장춘에 들러 일제강점기에 이곳까지 흘러 들어와 ‘흰 바람벽이 있어’ 같은 절창을 썼던 시인 백석의 흔적을 탐사했던 우리는, 둘째 날 명동촌과 용정을 가로지르면서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탐색하였다. 명동촌과 용정이야 윤동주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여러모로 잘 알려진 곳이니 새삼 새로운 정보가 있을 리 없지만,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그동안 많이 변해버린 곳에 대해서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다시 북간도를 찾아 나섰던 몇 가지 기억을 풀어보려고 한다.

▲  중국 북간도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생가 터 인근의 묘소와 비석의 최근 모습. 잔디가 무성한 주변의 다른 묘소와 달리 봉분이 흙으로 조성돼 있어 처량한 느낌을 주고 있다.

◇ 윤동주 생가와 묘역의 변화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명동촌’이라고 한글과 중국식 한자가 나란히 쓰인 초라한 안내석이 있고, 그 바로 뒤에는 한글로 ‘윤동주 생가’라고 쓰인 우뚝한 입석이 있다. 여기까지는 지난 2000년대 초반 그대로이다. 그런데 2012년 중국 지방정부는 생가 앞에 한글과 한자로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나란히 새긴 커다란 자연석을 설치하였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의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며, 또 여러 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다시 말하지만 윤동주는 그의 절창 ‘별 헤는 밤’에서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이라고 썼다. 윤동주가 중국 조선족 시인이라는 것은, 훗날 개변된 국경이나 소수민족 개념을, 아직 그런 것이 생겨나기도 전에 살다 죽어간 이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소급 명명인 셈이다. 윤동주에게 중국은 ‘이국(異國)’이었는데도 말이다.

모처럼 감격적으로 돌아본 생가는 앞마당이 현저하게 비좁아졌고, 너무 많은 시비들이 어지럽게 놓여 한적하고 성스러웠던 공간이 비속화한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윗부분이 잘려나간 채이지만 우물터 위에 당당하게 서 있던 김약연 목사 기념비나 낡은 옛 교회 건물은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고, 최근 무수하게 세운 시비들과 새로 짓고 있는 기념관이 이 공간의 통속화 과정을 잘 말해주는 듯했다. 마당 한구석에는 ‘윤동주 생가 옛터’라는 이름의 안내석이 하나 서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 생가가 ‘조선족 전통 구조로 된 집’이며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지원을 받고 국내외 여러 인사들의 정성에 힘입어 1994년 8월 역사적 유물로서 윤동주 생가를 복원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비석을 세운 날짜는 ‘1994년 8월 29일’ 곧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이윤기 소장이 아낌없는 지원을 해서 복원 완료한 시점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 오도(誤導)다. 얼마 전까지도 이 비석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은 윤동주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흡수하고자 하는 동북공정 이후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비석 세운 날짜를 명기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옛 교회에 ‘윤동주 문학과 생가 보존에 도움을 주신 선생님’이라는 제목 아래 이 소장의 사진이 외롭게 걸려 있는 것이 시선에 들어왔다. 여러 번 보았지만 이번처럼 초라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이 소장은 1932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해외한민족연구소를 설립하여 해외한민족 유적지를 복원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등 한민족 독립운동 조명에 온 힘을 기울인 분이다. 그 구체적 실례로 이 소장은 옛 대성중학을 복원하였고, 명동촌과 명동교회, 윤동주 생가를 복원하였다. 마치 그곳 지방정부가 힘써 복원하고, 해외한민족연구소는 재원 지원만 한 것처럼 기록해 놓은 것은 명백한 역사 오도인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소장의 순연한 열정과 업적을 깊이 기억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한 것은, 윤동주의 ‘조선족’ 명명이 묘역에 새로 세워진 표지석에도 새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2014년 7월 15일에 세워진 그 돌에는 ‘윤동주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다’라고 첫 문장이 시작되는 길지 않은 글이 새겨져 있다. 송몽규는 여전히 ‘청년문사송몽규지묘’라는 묘석 아래 윤동주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윤동주 묘역은 여럿이 함께 참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공간이 비좁아 있었는데, 수년 전 들렀을 때보다 비석이 많이 세워지고 실질적 추모 공간은 좁아진 것이 꼭 생가의 공간 변형을 닮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윤동주 일가는 일제 탄압을 피해 북간도로 이주한 것일 뿐, 중국으로 망명하거나 이민한 것이 아니다. 용정 동산 위아래에 가까이 묻힌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과 죽음을 중국 근대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점진적 의지가 거듭 서글프게 느껴졌다.

▲  송몽규의 옛 집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 송몽규 옛집의 복원

윤동주 생가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서는 ‘송몽규 옛집’이 복원되고 있었다. 영화 ‘동주’를 통해 송몽규가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인 관광객을 의식하여 서둘러 복원하는 거라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마당에는 송 씨 가문을 상징하는 큰 소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고, 마당에서는 우물을 복원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이 우물에서 자란 네 마리 용이라고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나운규의 이름을 임시로 적어놓았다. 그동안 무심하게 방치하다가 재빨리 시류에 영합하는 중국 지방정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또 한 번 씁쓸했지만, 그래도 송몽규가 어린 시절을 지냈던 집이 복원되어 1917년생 사촌지간의 삶과 죽음을 상상해 보는 구체적 공간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입구 표지석에는 송몽규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시 ‘밤’이 새겨져 있다. “고요히 침전(沈澱)된 어둠/ 만지울 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 깊구나/ 홀로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멀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라는 내용의 이 작품은 조선일보 1938년 9월 20일자에 실렸으니, 송몽규가 연희전문 1학년 때 쓴 작품인 셈이다. ‘침전’이나 ‘쉬파람’ 같은 단어가 윤동주를 금세 떠올리게 한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복원을 완료한다고 하는데, 어떤 모습으로 단장될지 벌써 걱정이 앞섰다.

◇ 옛 광명중학 터

그리고 또 다른 여정을 하나만 더 소개해 보자. 우리는 윤동주가 다녔던 은진중학의 옛터를 가보았다. 나로서는 용정에 꽤 많이 왔었는데 이곳만은 초행이었다. 지금은 용정시 제4중학이 되어 있는 옛 은진중학은, 1920년 2월에 개교하여 1946년 9월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1946년 9월 16일 중국 정부는 이곳의 여섯 학교 즉 은진중학, 명신여자중학, 동흥중학, 광명중학, 대성중학, 광명여자중학을 통합하여 용정중학으로 명명하였다. 송몽규는 통합 이전의 옛 대성중학을 나왔고, 윤동주와 문익환은 옛 광명중학을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 것은 옛 광명중학 터였다. 광명중학은 1921년 5월 28일 박례현, 윤화수 등이 영신학교로 설립하였지만 1925년 일본 외무성과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일본인 히다카 헤이지로가 운영권을 넘겨받아 광명학원으로 이름을 바꾼 학교다. 그런데 이번에 그 터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보았는데, 옛 대성중학에서 지금의 용정중학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옆에 있는 북안소학교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말하자면 윤동주와 송몽규는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각각 광명중학, 대성중학을 다니다가 1938년 연희전문학교를 함께 다니게 된 것이다. 광명중학 터도 은진중학처럼 안내석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  이육사 시인이 1944년 순국한 감옥으로 알려진 북경의 한 건물.

◇ 이육사의 북경감옥

우리는 마지막 일정에 북경에 들러 이육사 시인의 순국 터를 찾아갔다. 이곳도 윤동주의 경우와 나란히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육사 선생은 윤동주보다는 송몽규와 가까운, 외향적이고 실천적인 이미지를 가진 불세출의 저항시인이다. 그의 생애와 시 세계를 따로 말할 계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의 죽음에만 접근해 보자. 선생이 대구에서 피검되어 북경 동창호동(東廠胡同)의 한 건물로 압송된 것은 1943년 가을이다. 더러 동창을 ‘東昌’으로 표기한 자료도 있는데 ‘東廠’의 오기(誤記)다. 이 건물은 정식 감옥이라기보다는, 일제가 비밀스러운 안가처럼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면서 많은 지사들을 고문하고 회유했던 곳이다. 여기서 이 선생은 최후 고통을 감내하면서 1944년 1월 16일 41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오래 방치된 탓인지 그야말로 다 허물어져 가는 흉물로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다. ‘이육사 순국 터’라고 국내 연구자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안내판도 사라져버리고, 이육사를 환기하는 어떤 상징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 정부로서는 이육사의 최후가 안타깝고도 처절하게 남아 있는 이곳이 한국 역사의 상징이 되는 것이 못마땅했던 듯하다. 이처럼 지금의 중국 땅 곳곳에서 우리 민족이 남긴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흔적을 발굴하고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나아가 민족사의 장으로 기억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편협하면 편협한 대로 근대 국민국가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핵심이 이러한 민족 원형의 보존과 기억에 있지 않은가. 윤동주 생가와 묘역, 송몽규 옛집과 묘역, 이육사 순국 터 등을 우리 민족이 많이 돌아보기를 다시 한 번 희망해본다.

◇ 올바른 기억 전승을 위하여

일제강점기 저항시는 민족어로 쓰인 근대문학 양식 가운데 민족의식을 가진 시작품을 말한다. 민족 현실에 대한 자각과 모국어로서의 창작이 그 필요조건인 셈이다. 따라서 저항시는 ‘저항 민족주의’라는 성격을 띠면서 모국어로 쓰인 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에서 ‘저항’이라는 순금의 영역을 우리 역사에 아로새긴 이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해가는 일은 양도할 수 없는 우리의 책무이자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윤동주의 기억에는 송우혜 선생이 쓴 평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윤동주 연구자는 물론, 일제강점기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웬만한 이들의 애독서가 되었다. 또 윤동주 연구의 아이러니라면, 윤동주 자료의 중요한 발굴과 발견에 오무라 마쓰오(大村益夫) 교수나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原泰子) 여사 같은 일본인들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자와 가쿠(愛澤革) 선생의 번역본이 2009년 등원서점(藤原書店)에서 멋지게 출간된 것도 우리의 ‘부끄럼’을 돋우는 장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분들의 기억 전승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또 윤동주, 송몽규, 이육사 선생이 보여준 기억의 정치학을 제대로 확장해가야 할 것이다. 이번 북간도 여정에서 바라본 아픈 현실이었다.

(문화일보 7월 25일자 22면 4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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