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읽어라.”
인터넷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 올라온 독자 리뷰의 한 부분이다. ‘식물의 힘’을 읽고 나면, 누구나 이 말에 조금도 과장이 없음을 알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선거구, 저소득층 공영주택이 가득한 곳, 뉴욕주에서 주민들 건강 상태가 가장 나쁜 동네…. 저자 스티븐 리츠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우스브롱크스의 험악한 현실이다.
가난에 찌들고 마약에 젖은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몸에 문신과 피어싱을 하고, 입에 욕설을 붙이고 산다. 수틀리면 수업 중에 연필과 책이 날아다니고, 주먹다짐도 흔히 벌어진다. 공부는 완전히 젖혀 둔 채, 보조금을 받으려고 출석 일수만 간신히 채우기 일쑤다. 평균 출석률은 40%, 졸업률은 17%에 불과하다.
저자는 학습 부진아에 말썽쟁이들만 모아 놓은 특수학급을 주로 가르쳤다. 교실에는 심지어 아이가 있는 학생, 보호시설에 다녀온 학생도 흔했다. 한마디로 통제 불능이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현장과 동떨어진 개혁안을 밀어붙이기만 하고, 현실에 지친 교사들은 시간만 때우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어느 날, 그 일이 일어났다. 수업 도중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학생 하나가 라디에이터 밑에 놓아둔 상자를 꺼내 내용물을 집어 던지려 잡아 뜯자, 교실 바닥으로 수선화가 와르르 쏟아졌다. 얼마 전 저자가 기증받은 상자였다. 그 속에 들어 있던 수선화 구근이 라디에이터의 따스한 공기 덕분에 아무도 몰래 꽃을 피운 것이다.
그로부터 세 가지 기적이 생겨났다. 첫 번째는 학생들이 홀린 듯 싸움을 멈춘 것이다.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주운 꽃을 건네고, 여학생은 부모에게 주려고 몇 송이를 챙기기도 했다. ‘식물의 힘’이 아이들 내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스티븐 리츠(오른쪽)는 처음부터 공공교육을 변화시키겠다는 웅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은 흙에서 시작되고, 학생들은 잠재력이 가득한 씨앗이라고 생각해 식물과 함께 학생들의 꿈을 키워 냈다. 리츠가 텃밭에서 학생들과 식물을 심고 있다. 여문책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녹색 식물이 가득한 교실에서 리츠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삶에 관심을 쏟아 왔던 저자는 ‘가르칠 수 있는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가장 열악한 조건에도 우리 모두의 관심을 사로잡고 영감을 주며 기쁘게 할 방법을 찾아내는” 자연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두 번째 기적은 그로부터 일어난다.
“저는 농사꾼입니다. 좋아하는 작물은 유기적으로 성장한 시민이죠.” 저자는 학생들을 유전적 잠재력이 가득한 씨앗으로, 지역사회를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키우기 위한 토양으로 본다. 그 지역 같은 최악의 토양에서는 교과 중심 수업이 아니라 “학교를 학생들 자신의 삶과 연관된 곳으로 만드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자존을 세우고 ‘학교에 올 이유’를 제공해야 했다.
이런 면에서 리츠는 ‘준비된 교사’였다. 그는 기간제 인턴으로 일할 때부터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방법들을 창안하곤 했다. 예를 들면 방정식 푸는 방법을 알려 주는 수학 랩을 창작해서 같이 부르거나 하는 식이었다.
‘식물의 힘’을 깨달은 리츠는 어떻게 했을까. ‘무시무시한’ 학생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가서 지역사회를 위한 나무 심기 행사에 참여했다. 그다음에는 학교와 주변 공터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 텃밭을 만들고 오래된 공장의 옥상 정원을 일구기도 했다. ‘그린 브롱크스 머신’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수학적, 과학적, 공학적, 생물학적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성인이 돼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거나 대학에 가서 공부할 동기를 얻었다. 식물을 활용한 수업이 언론이나 방송 등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리츠의 학생들은 지역사회의 영웅이 됐다. 출석률과 졸업률이 극적으로 높아지고, 연합고사 합격률도 올라갔다. 식물이 그야말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세 번째 기적은 리츠가 테드(TED) 프로그램에서 연설을 하면서 일어난다.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식물의 힘’을 교실을 넘어서 학교 전체로, 지역사회로 확대하는 기획들을 실천해 간다. 아이들과 함께 교실 안에서 식물을 길러 직접 요리해 먹음으로써 정크 식품에 길든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꿔 나간다. 바른 식습관을 실천하면서 저자 자신도 50㎏ 가까이 감량하는 경이를 연출한다. 또한 지역 내 일터 2200군데와 결연해 학생들과 함께 도시 텃밭을 조성하고 일자리를 주선하는 등 지역 전체의 토양을 바꾸는 작업에 나선다. 이런 경이로운 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저자는 학생들과 함께 백악관에 초대받고 바티칸에서 교황을 만나기도 하는 등 전 세계 혁신교육의 녹색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을 들고 싶다. 동료 교사의 몰이해 등 수없는 좌절에도 단 한 차례도 꺾이지 않은 채 일어나는 저자의 무릎이다. 농구선수를 꿈꾸던 저자의 꿈을 무너뜨린 그 무릎이,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면서 한 교사를 희망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식물의 힘’으로 아이들을 구한 이야기이고, 절망에 빠진 교육을 혁신하는 이야기이며, 망가진 도시를 재생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교사가 “공동체 모두를 감동시키며 선의의 잔물결을 퍼뜨리는” 거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403쪽, 2만 원.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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