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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오승훈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13일(水)
베트남에서 펼쳐지는 韓日 경제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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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북쪽에 있는 노이바이국제공항은 시설 면에서 인천공항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2014년에 확장된 새로운 터미널 건설에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약 9억 달러가 투입됐다고 한다. 남쪽으로 홍강을 건너 시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역시 일본 ODA로 건설됐다. 길옆으로 파나소닉을 비롯한 일본 기업들의 공장이 이어졌다. 웅장한 창롱 다리에도 베트남과 일본 국기가 나란히 새겨진 표석이 보였다.

씁쓸한 기분으로 시내로 들어서자, 도시의 상징물인 듯한 65층 빌딩이 한눈에 들어왔다. 2014년 9월에 완공한 ‘롯데센터 하노이’였다. 베트남의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연상케 하는 272m 높이의 이 센터에는 롯데호텔뿐만 아니라 롯데백화점, 롯데마트가 들어서 한국 쇼핑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역설적이게도 그 빌딩은 일본 대사관과 코를 맞대고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시 외곽 북동쪽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1공장(박닌)도 아득하게 들어왔다. 북쪽에 있는 2공장(타이응우옌)과 함께 베트남 수출의 21%를 차지하는 베트남 경제의 심장이다. 한국과 일본 간 또 다른 경제 격전 현장, 그곳이 베트남이었다. 단순 조립의 우회 수출 생산 기지에서 1억 명에 가까운 인구의 거대 소비시장으로 ‘제2 도약’ 중인 베트남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은 베트남 투자국 가운데 누적 기준(1988년 이후) 1위다. 한국의 수출 대상국으로도 베트남은 2010년 9위에서 6년 만에 3위로 도약했다. 그 이정표를 굳게 세운 것은 기업들이다. 롯데의 베트남 시장 선점은 집념의 산물이다. 1998년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10여 개 계열사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롯데센터 하노이가 베트남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 2009년 금융위기로 각국의 외투 기업들이 발길을 돌릴 때 롯데는 고집스럽게 한층 한층 빌딩을 쌓아 올렸다. 신동빈 회장은 “그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이 돼야 인정받는다”고 독려했다.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이 신 회장에게 “어려울 때 힘을 줬다”고 고마워했다는 게 인사치레는 아니었을 성싶었다.

삼성의 위상은 선견(先見)의 소산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베트남 수교보다 1년 앞서 1991년에 이미 지역전문가를 보내면서 시동을 걸었다. 1995년 호찌민에 작은 TV 공장을 처음 세운 이후 지금까지 약 200억 달러(약 22조6000억 원)를 투자한 삼성은 베트남 최대 외투 기업이다. 휴대전화 공장만 해도 놀라운 산업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일자리 규모가 1, 2공장에서만 11만 명, 1차 협력사까지 합하면 20만 명에 이르렀다. 통근버스 800대, 오토바이 2만3000대가 늘어선 주차장들이 장관이었다. 고졸 생산직이 다수여서 평균연령이 22세로, 공단 전체에 ‘젊은 베트남’의 활력이 넘쳤다. 이들의 식사에 하루 쌀 20t, 수박 5000통, 돼지 100마리가 소비된다. 한 조사기관의 2016년 베트남 기업 브랜드 호감도 조사에서 삼성은 1위, 롯데는 7위를 차지했다. 2∼6위는 네슬레, 소니, 애플, 나이키, 샤넬이었다.

이제 베트남이 더는 한국 기업의 독무대가 아니다. 외투 기업을 환대했던 베트남 정부는 고부가가치화를 유도하고 있다. 인건비와 임차료가 치솟아 노동집약산업의 투자 여건은 악화하고 있다. 외투 기업들은 베트남의 내수와 동남아 시장의 교두보로서 가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가장 매서운 경쟁 상대는 일본이다. 호찌민에는 ‘오토바이의 나라’를 바꿀 지하철 건설이 한창인데, 어김없이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의 깃발이 내걸려 있었다. 그 공사를 일본 건설업체들이 맡는다. 생색은 내고, 실속은 도로 챙기는 일본 투자 방식의 전형이다. 일본은 베트남에 대한 ODA 제공 국가 중 1위다. 호찌민의 거리에는 일본 식당들이 우후죽순 들어선다고 현지 교민들은 입을 모았다.

국가 자본을 등에 업고 베트남을 공략하는 일본 기업들에 비하면 한국 기업들은 맨주먹이나 다름없었다.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건 한류뿐인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한국 기업인의 푸념이 아프게 남았다. “한국에선 기업에 일자리 늘리라면서 법인세 올리고, 최저임금 올리고, 규제도 강화하고 그런다지요. 우리를 응원해주리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고투(苦鬪)를 안다면, 뒷다리나 안 잡았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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