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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15일(金)
아름답고도 슬픈 ‘언약의 장소’…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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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약속’의 주요 장면 촬영지인 전주 전동성당은 호남지역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돼 있다. 그 규모가 크고 외관이 뛰어나게 아름다워 영화 및 드라마의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94) 영화 ‘약속’의 명소 전주 전동성당

유난히 청명했던 9월의 첫날, 초가을 정취를 느끼며 전주로 향했다. 전주는 매년 봄이면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찾는 도시다. 이번에는 초가을에 열리는 국립 무형유산 영상축제에 참석할 겸 또한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영화 속 촬영지를 보기 위해 전주를 찾았다.

서울∼전주 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높은 하늘과 막힘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가을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호남평야에 들어선 것이다. 그 경관을 조금 더 감상하기 위해 무작정 고속도로를 빠져나갔다. 벼가 진초록으로 물들어 있는 호남평야에는 광활함과 가을의 풍성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며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는 옛 정취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평온했다. 선조 때 지어진 전주향교와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이 모셔진 경기전,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구조를 보여주는 민속자료 제8호인 학인당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조선시대 전주성의 남문이었던 풍남문을 보면서 당시의 전주가 서울 못지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 온전한 고을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전주(全州)는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도시다. 많은 영화가 전주에서 촬영됐다. 전주가 영화 도시가 된 배경은 민족의 흥(興)과 예(禮)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와 예술이 융성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여건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서해안의 풍부한 해산물이 있고 동쪽으로 무안, 진안, 장수의 산림자원이 있다. 풍부한 농수산물이 문화와 예술을 발달시킬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전주에서 촬영된 영화는 많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영화로는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와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꼽을 수 있다. 그것들은 한옥마을과 전동성당 그리고 경기전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예향(藝鄕)의 도시, 전주를 알리고 명소를 소개한 영화는 1998년 개봉된 김유진 감독의 영화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조직폭력배 두목인 공상두(박신양)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오면서 시작된다. 담당의사 채희주(전도연)는 붕대를 풀자 드러난 상두의 맑은 얼굴에 설렘을 느낀다. 상두 역시 희주를 사랑하게 되고 퇴원 후, 끈질긴 구애 끝에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반대파와의 싸움에서 살인을 한 상두는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다. 결국 자수를 결심하고 성당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결혼식을 한 뒤 상두는 희주를 떠나게 된다.


“신부 채희주는 꽤 괜찮은 의사입니다. 푸른 들판 같은 미래가 있고, 그 길로 곧장만 가면 그걸로 만사형통입니다. 어느 날 벼락을 맞더니 진구덩이에 빠집니다. 나오라고 했는데도 안 나옵니다. 당신께서 저한테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혼자 남겨두고 떠난 게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미운 거 있죠. 하지만 이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저, 정말이지, 정말이지 인간이고 싶지 않았습니다.”(영화 ‘약속’의 마지막 장면, 공상두의 대사)

상두와 희주는 텅 빈 성당으로 들어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둘만의 슬픈 결혼식을 진행한다. 개봉과 함께 큰 화제를 낳았던 영화 ‘약속’의 명장면이다. 영화 속 명대사들 또한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되었고 아직까지도 회자하고 있을 정도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약속’은 여의사와 조직폭력배 두목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신파성이 강한 멜로 드라마로 관객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1990년대 후반, 한국 멜로 영화의 흥행을 이어간 대표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명장면이 촬영된 전동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전을 지나면 나오는 전동성당은 서울 명동성당, 대구 계산동 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회색과 적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의 겉모습과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아름다운 건축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다. 내부 천장은 아치형이고 양옆의 통로 위 천장은 십자 형태로 교차된 아치형이다. 전동성당은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지게 됐고 현재는 전주 여행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관광객들에게 전동성당은 꼭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이고, 사진을 찍는 작가들에게는 꼭 찾는 출사지이기도 하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1호에 맞게 전동성당은 규모가 크고 외관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영화에서 상두와 희주의 결혼식이 진행됐던 성당 내부의 중앙과 좌우의 비잔틴 양식 종탑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웅장함을 내뿜고 있다. 또한 둥근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럽의 여느 성당 못지않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외장은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이뤄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동성당은 건축물로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유적지다.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동성당은 천주교회사에 기록된 순교지 중의 하나로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주시 전동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1791년에 로마 가톨릭 교회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는 윤지충, 권상연과 1801년에 호남지역 첫 사도였던 유항검, 윤지헌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이들의 순교를 기리고자 1891년에 프랑스 보두네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했던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맡아 1914년에 완공됐다.

호남지역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며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사용했고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순교지였던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 밖에 세워졌지만 이후에는 확장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본당 옆에 위치한 사제관은 본당을 세운 뒤 2대 주임신부였던 라크루 신부가 1926년에 건축했다. 전주 전동성당과 사제관은 당시의 건축기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며 역사적 가치가 큰 근대 건축물이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던 배경은 감독의 연출도 한몫했다. 영화 ‘약속’은 작가 이만희의 희곡 ‘돌아서서 떠나라’를 각색한 것이다. 김유진 감독은 단조로운 희곡의 시간 전개를 바꾸어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원작 ‘돌아서서 떠나라’는 수녀가 된 희주가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공상두를 면회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역행하는 시간 구성으로 된 작품으로 급박한 사건의 전개나 갈등의 고조를 통한 긴장감보다 끊임없는 대사를 통해 극을 진행시킨다. 반면에 김 감독은 희주와 상두의 만남과 헤어짐까지 시간적인 순서대로 연결시키면서 클라이맥스 장면인 비극적인 결혼식을 올리는 상황까지 도달하기 위한 여정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스웨던 출신의 여가수 제시카가 부른 굿바이(Good bye)는 멜로 영화 장르를 더욱 빛냈으며 한동안 이 영화의 OST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배우들의 열연 또한 큰 역할을 했다. 박신양과 전도연 그리고 정진영의 연기는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 감동을 주며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도 누렸다. 1998년 제19회 청룡영화상에서 박신양은 남우주연상을, 그리고 정진영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전도연은 1999년 제22회 황금촬영상 인기상을 수상했다. 또한 1999년 제7회 춘사영화제에서 박신양은 남자연기상을 받기도 했고 정진영은 1999년 제36회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약속’은 신파 클레세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비록 신파물이라고 할지라도 관객의 공감대를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두 주인공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되새기게 하는 영화 ‘약속’은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감동이 잊히지 않는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전주의 전동성당 역시 우리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명소로 가슴속 깊이 남아 있다.

글·사진=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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