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속내 파악못한 통상당국… FTA 협상전략 수정 불가피

김현종 訪美 간담회

협상서 폐기 가능성 배제못해
美의회내 우호세력 확보 절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발언이 단순히 협상용이 아니었다는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평가는 우리 통상당국이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한·미 FTA 폐기가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는 카드라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통상당국은 지금까지의 협상 전략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28일 방미 중인 김 본부장의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 발언에 대해 산업부 내부에서도 심각성을 숨기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과 협상 논의가 진행 중임을 감안해 산업부 측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내부에선 한·미 FTA 재개정에 대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통상당국 수장인 김 본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 발언은 블러핑(엄포)이 아닌 것 같다”고 밝힌 상황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언제든 트럼프의 극단적인 입장을 협상 테이블에서 꺼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폐기 주장이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우리도 이를 고려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하자마자 지난 24일 서둘러 미국을 다시 방문한 것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미리 파악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리 측에서 먼저 내달 4일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미국에서 갖자고 제안한 것도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단 통상당국은 미 의회와 재계 등 트럼프의 극단적 조치를 견제할 수 있는 미국 내 ‘친한국’ 단체들을 적극 설득할 방침이다. 한·미 FTA의 효과를 분석하자는 우리 측의 제안을 트럼프 행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게 거의 확정적인 상태에서, FTA 폐기를 반대하는 미국 내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한·미 FTA 폐기를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며 자국의 적자가 심각한 자동차 부문과 큰 이익을 보고 있는 농산물에 대한 추가 개방을 압박하는 방식을 꺼낼 가능성이 크다. 향후 통상 전략을 수립하는 데 정부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