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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06일(水)
“반려동물 끝까지 포기않는 1人 있다면 전문외상센터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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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희 서울대 동물병원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을 치료하기 위해 초음파 진단을 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국내 첫 24시간 동물전용응급센터 문 연 윤정희 서울대 동물병원장

펫팸족 457만가구…21% 달해
사람과 동물 사이‘공존’꾀하는
동물복지형 진료병원이 지향점

반려동물 전용 응급센터는
중증외상센터와 유사 개념
동물 응급전공의 자체 없어

사람의 ABO식 혈액과 달리
사람보다 힘든 게 동물 수혈
개만 해도 피 종류가 12가지

혈액 수요 매혈로 메우는 판
무작정 금지땐‘동물 의료대란’
반려동물 전용 혈액은행 필요


“환자의 비장엔 ‘혈관 육종’이라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손을 댈 수조차 없었어요. 까다롭다던 안내견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끝낸 친구였습니다.

생을 마감하던 날, 한 번도 환자의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보호자가 흘리던 눈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숨진 ‘환자’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동하던 래브라도레트리버였다. 윤정희(55) 서울대 동물병원장(수의과대 교수)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수의사 면허를 갓 취득해

초보 수의사로 일했던 시절, 말로만 듣던 인간과 동물의 정신적 교감을 직접 목격한 첫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 원장에겐 동물이 ‘환자’다.

지난달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롭게 탈바꿈한 서울대 동물병원의 수장(首長)인 윤 원장을 증축 개원 일주일 뒤인 11월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동물병원 4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윤 원장은 우선 국내 반려동물 가구 급증 추세와 인식 변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른바 ‘펫팸(Pet+Family)족’은 457만 가구로 전체의 21.8%에 달한다. “과거 동물은 인간을 위한 부수적 존재에 불과했지만, 최근 들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이와 같은 개념을 ‘인간-동물 유대’(human-animal bond)라고 합니다.”

윤 원장이 이끄는 서울대 동물병원은 지난달 17일 새 단장을 마쳤다. 132억 원이 투입된 2년간의 증축 공사를 통해 개원(1997년) 20년 만에 규모를 대폭 키웠다. 지상 4층, 지하 1층 구조로 종전 병원보다 3배가량 넓어진 새 건물에는 첨단 장비를 갖춘 반려동물 전용 응급센터, 수술실, 건강관리센터 등이 들어섰다. 더욱 쾌적한 공간을 찾던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요구를 고려해 ‘VIP 전용 입원실’도 갖췄다. 윤 원장은 새롭게 들어선 ‘반려동물 전용 응급센터’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에 이어 북한군 귀순 병사까지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외상 환자를 치료해내면서 최근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환경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반려동물 전용 응급센터는 중증외상센터와 유사한 기관이다.

“반려동물 응급센터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현재 국내에 동물 응급 전공의 자체가 없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중소형 동물병원보다도 일부 대학병원이 응급 대처에서는 더 못한 경우도 태반입니다. 사람을 치료하는 중증외상센터가 그렇듯 동물 응급센터 운영에도 정말로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서울대 동물병원이 반려동물들의 응급 진료를 위해 내년 3월부터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기로 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중증외상’ 전용 응급센터는 아닙니다. 그러나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반려동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보호자들이 단 1명이라도 있다면, 동물 전용 중증외상센터는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동물을 수술할 때는 사람보다 더 힘든 점이 있다. 바로 수혈이다. 사람의 경우 ABO식 혈액형에 따라 수술 등 치료에서 일치하는 혈액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동물의 피는 사람보다 훨씬 정교한 체계를 갖춰 수술 시 수혈 자체가 매우 까다롭다는 게 윤 원장의 설명이다. 반려동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만 해도 혈액형이 크게 12가지로 나뉜다. 피를 구했다고 끝이 아니다. 수술 직전 교차반응 등 하나하나 정교한 확인 절차를 마치고 나야 비로소 수혈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반려동물의 피는 사람의 것보다 훨씬 귀하다.

“미국의 경우 헌혈이 가능한 대형 견을 각 가구에서 많이 키우는 것과 달리, 국내는 95% 이상이 헌혈 자체가 불가능한 소형 견입니다. 서울대 동물병원이 자체적으로 헌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체를 따져봤을 때 구조적으로 헌혈만으로는 반려동물 수혈 체계를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보편적 수혈 시스템은 공여 견종을 통한 ‘매혈(買血)’입니다.”

‘피를 산다’는 것에서 도덕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는 있지만, 사실 매혈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윤 원장에 따르면 엄밀히 말해 매혈과 관련한 법 규정 자체가 없다. “실제로 도덕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매혈을 하지 말라고 하면 이것 또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동물판 의료 대란’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혈액과 관련해 ‘반려동물 전용 혈액은행’을 제대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공급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재단법인을 만든다든가 해서 동물 전용 혈액은행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원장은 국내 수의학계의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수의학은 임상 윤리의 최전선에 있는 학문이다. 그 때문에 지난 세월 크고 작은 논란으로 부침을 거듭했다. “사실 진료와 연구를 곧바로 연관 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윤리 문제에선 수의학계 내부에서도 정리가 안 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수의과대의 이상과 맞지 않는 연구자도 분명 몇 분 계십니다. 과정이 아닌 결과물만 보는 분들입니다. 물론 대학이라는 기관의 특성상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한 연구자가 대중에게 심는 이미지가 결국에는 수의사 전체의 이미지로 연결되기도 하므로 학계에서도 반드시 자정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윤 원장은 동물 의약품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그동안 동물 의약품은 사람이 사용하는 의약품에 비해서 투약 관리나 오·남용의 문제가 가볍게 다뤄져 온 측면이 있었다. 이와 관련, 최근 동물 의약품에 대한 처방전 발급 문제를 두고 수의사 측과 동물 약국 측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사실상 대부분의 동물 의약품을 약사가 취급할 수 있습니다. 수의학 쪽에서는 의약 분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이죠. 이 제도가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동물이니까, 사람만큼 중요하지 않으니까 약사가 동물 의약품을 취급해도 괜찮다는 사고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부만 제외하면 지금도 수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다 구할 수가 있습니다. 수의사 면허증이 왜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입니다. 처방 가능한 의약품은 다양합니다. 동물들이 먹는 항생제부터 예방 백신까지 사실상 약사가 취급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상 불법도 아니죠. 밥그릇 싸움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동물 의약품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나라가 없습니다.”

윤 원장은 수의학 교육도 시대에 맞게 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는 최근 미국 수의사회 교육 인증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에서 수의사를 하기 위해선 자체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수의사 교육의 품질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선진국형 ‘동물 복지형 전문 진료병원’으로 가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대학에서부터 제대로 된 수의학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수의사는 환자인 동물과 보호자인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따라서 대학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밑바탕으로 두는 교육이 구현돼야 합니다.”

윤 원장은 국내외 수의영상의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서울대 수의과대를 나와 수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수의영상의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현재도 수의영상의학 관련 국제학술지 ‘Veterinary Radiology & Ultrasound’ 부편집장, ‘세계수의방사선과학회’ 책임자(Director) 등을 맡고 있다. 그런데 윤 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영상의학에 관심이 있었던 거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딱 잘라 대답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국가가 나서 정책적으로 우유를 생산했어요. 젖소 관련 산업 붐이 일어 캐나다, 미국 등에서 우유 생산이 가능한 소 품종을 엄청나게 수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젖소 관련 업무를 맡은 수의사가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88 올림픽’ 이후 반려동물 문화가 생기면서 작은 동물이 뜨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두 번의 큰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어쩌다 보니 ‘영상의학’이라는 불모지를 걷게 됐습니다. (웃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영상의학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장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진료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지요. 혹시나 내 진단이 틀리면 이후 모든 과정이 뒤틀릴 수 있으니, 지금은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윤 원장은 “서울대 동물병원은 단순히 치료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동물을 이해하려는 노력, 사람과 동물 사이의 공존을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동물병원은 ‘치료’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지만 동물 복지형 전문 진료병원은 인간과 동물의 ‘소통’에 방점을 둔다는 게 윤 원장의 설명. 외상 치료 등 1차 진료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노령성·난치성 반려동물 질환에 대해 전문 진료를 할 수 있는 의료진과 이에 걸맞은 의료시설을 갖춘 것도 특징이다. “새로 단장한 병원에는 여기에 ‘환경’ 개념을 더했습니다. 분위기 좋은 장소에 가면 이성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듯, 좋은 환경이 인간과 동물 간 더욱 강한 유대를 만듭니다. 즉, ‘인간·동물·환경’ 3요소가 호혜적 관계를 맺는 이른바 ‘원 헬스(One Health) 통합형 의료체제’를 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김성훈·이희권 기자 powerkimsh@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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