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한민국 미래 리포트>이기주의에 발묶인 ‘원격진료’… 규제에 길 막힌 ‘빅데이터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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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혁신없는 산업, 근본부터 바꿔라 - ⑤ 발걸음도 못뗀 디지털 보건산업

4차산업 혁신기술 대부분
보건산업과 연결돼 있는데

전세계선 보편화 융복합의료
동네의원 등 반대로 ‘제자리’

개인정보 융통성없는 규제
환자 맞춤 의료서비스 제한

유전자 관련 윤리문제 갇혀
생명과학 응용 산업도 한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다양한 첨단기술이 융·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 기술이 대부분 보건산업과 연결돼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 최근 기술개발 속도를 보면 정보기술(IT) 등을 기반으로 한 24시간 건강관리가 가능해지고, 인공지능(AI)이 질병 빅데이터를 분석, 환자 개인 유전자 특성에 맞는 치료방법을 찾아주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이런 기술들은 관련 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각광받는 동시에 삶의 질을 한층 더 높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IT 등과 융·복합한 보건산업 분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종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첨단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규제와 지역 이기주의라는 장벽에 막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보건산업과 연관 산업 간의 융·복합 등 새로운 시장 사업모델 창출을 위해 법·제도적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발걸음도 못 떼는 IT 융·복합 의료 = 규제 장벽에 묶여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원격의료다. 의료와 IT산업의 융합을 통한 관련 기술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이 보편화돼 있으나 국내에서는 규제와 이익단체의 반대로 원격의료 산업이 수년째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30일 “대면의료행위만 의료행위로 간주하는 현행 의료법으로 인해 AI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 활용이 요원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원격진료를 허용해 AI 기술이 질병 예방서비스나 미충족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원격진료 활성화를 위해 ‘의사와 의사 간’ 원격진료만 허용하는 현행 의료법을 ‘의사와 환자 간’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할 때마다 의사단체와 진보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동네의원 중심의 의사단체들은 원격의료를 시행하면 대형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반대한다. 진보 정치권 및 시민단체들은 ‘영리 의료 등 의료 산업화’로 연결될 수 있다며 투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후 일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시행된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연구와 시범사업은 대부분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머무르고 있는 수준이다.

국내와 달리 선진국의 원격의료는 원격지 환자에 대한 상담 및 처방에서 시작해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로 대폭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유비쿼터스, 스마트 등 기술기반의 다양한 IT 장비를 활용해 상담·처방·만성질환자 상시 모니터링·홈케어·건강관리에까지 진출했다. 미국 등에서는 원격의료 서비스로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고, 치료 효과도 높아지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빅데이터는 ‘LOCK 데이터’= 미래는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AI 등 ‘데이터’가 핵심이다. 보건의료 산업 분야 역시 질병 및 환자정보를 토대로 AI 분석과 맞춤형 진단이 가능한 만큼 데이터를 빼놓고서는 발전을 논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및 분야별 특별법 등의 규제 범위가 넓어 빅데이터 관련 분야 연구와 발전도 함께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 개인정보 등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의료 기관 간 정보시스템 교류가 사실상 불가능해 환자들은 병원에 다닐 때마다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임상 연구도 제한적이다. 빅데이터가 공급자 위주로 오픈돼 수요자들이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개념 자체도 포괄적이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개인 정보 개념은 식별 가능성만 인정되면 모든 정보가 개인정보로 규정되고, 프라이버시에 해당하지 않는 개인정보조차 민사상 손해배상을 넘어 형사처벌 및 행정 제재 대상”이라고 밝혔다. 장 위원은 “프라이버시에 해당하지 않지만, 경제적·산업적 활용가치가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고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이나 시민의 민감도에 따라 차등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리문제에 갇힌 원천기술 =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바이오·나노·정보·AI’ 기술 가운데 특히 ‘레드 바이오’(생명공학이 의학·약학 분야에 응용된 개념)가 가장 큰 혁신분야로 전망되고 있다. 혈액의 붉은색을 본떠 붙인 ‘레드 바이오’는 유전자분석이 핵심이다. 줄기세포, 형질전환을 위한 복제동물 개발, 유전자 가위 등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유전자 분석을 넘어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지면 생명체에 관련한 다양한 현상 규명은 물론, 난치병 극복도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다. 다만, 우리나라는 이런 레드 바이오에 대한 연구가 거센 윤리 논란을 불러오고 있으며 ‘생명윤리법’을 통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체세포배아복제 등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연구는 황우석 박사 사건 이후 매우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2일 신산업 및 선도사업 규제혁신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발표한 보건의료 분야 개혁은 장기이식분야와 유전자 치료에 국한됐다는 한계가 있다. 배아, 난자, 정자, 태아에 관한 유전자 치료는 아예 금지돼 있다. 제한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종교단체 반대를 감수해야만 한다. 이로 인해 업계의 상업적 활동은 물론, 연구자의 연구개발도 위축된 상황이다. 실제 줄기세포 관련 국내 연구자들은 연구를 위해 해외기관으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앞으로 대폭 성장하게 될 유전자, 유전체 분석 관련 시장을 고려해 관련 제도의 정비나 분야 간 이해 상충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