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訪南’ 이후… 北, 다음 카드는?

쌍중단 수용·6者복귀선언 등
또다시 파격카드 꺼낼 가능성
비핵화 미룬 채 韓美균열 노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의 실무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북·미 갈등이 여전해 남북관계 역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한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수용하거나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는 등 파격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비핵화 대화는 최대한 뒤로 미룬 채, 우리 정부가 미국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연기 제안을 하도록 유도해 한·미 동맹을 흔드는 전술을 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결과를 보고받고 남북관계 개선·발전에 대한 실무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우리 측에 제안한 남북정상회담과 남북 교류·협력 방안은 북·미 관계의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는 진도를 빼기 어려운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발언한 배경에도 이런 인식이 자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역시 미국과 무작정 대립각을 세우는 수준을 넘어, 판을 바꾸는 전략 짜내기에 골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중·러가 제의한 ‘쌍중단’ 카드를 받겠다거나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힌 뒤 조기 회담에 응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환영하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 일대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실장은 또 “우리 정부가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추진할 확률도 높다”고 덧붙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쌍중단이나 6자회담 복귀 같은 파격 카드는 아니더라도 “북한이 4월 남북연석회의 70주년 등을 계기로 남한의 민간급 인사나 고위급 인사를 초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김정은이 아직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한국을 끌어들여서 미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펼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남북관계의 동력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에 전략자산 반입 금지나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연기 등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북한의 의도에 말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