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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3일(金)
기업 숨 조이는 그림자 ‘코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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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쓴소리’ 경총 부회장 퇴진 후
경제단체 요직 관료 출신 일색
기업 이해 달린 현안에도 침묵

참여연대 저격수 3인 포진에
미운털 박힐까 재계 전전긍긍
형체 없는 코드가 활력 짓눌러


지난달 20일 청와대가 노동권을 대폭 강화한 대통령 개헌안을 내놓자 기업인들 사이에선 “경영 환경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와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경제단체들은 공식 논평 없이 침묵했다. 대통령 개헌안이 어차피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회원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경제단체의 역할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새로 임명된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 4곳의 상근 부회장은 모두 관료 출신으로 채워졌다. 경제단체 상근 부회장은 사실상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기업의 CEO 위상과 비슷하다.

주목할 곳은 경총이다. 송영중 신임 부회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노사관계비서관을 지낸 고용노동부 출신이다. 경총은 특히 노사문제에서 노동계와 대립 구도를 이루는 사용자 측 대표선수다. 그 선봉장을 맡기엔 어색한 경력이고, 경총 역사에서도 전례가 없다. 의문의 단서는 김영배 전임 부회장에게 있다. 그는 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가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질책을 당했다. 한동안 입을 닫았던 김 전 부회장은 기어이 최저임금 고율 인상에 쓴소리를 던지곤 올 2월 밀려났다. 그가 예고했던 일자리 정책,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후유증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경제단체 맏형을 자처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의 노골적인 패싱으로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경제단체마다 정부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게 역력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항의해 소송까지 걸었던 소상공인연합회장은 1월 청와대 중소기업·소상공인 간담회에 초청받지 못하더니, 얼마 전 재선되자 마자 중소벤처기업부의 감사 표적이 됐다. 누군가는 ‘경제단체 습격사건’이라고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6일 춘향전에 나오는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란 이몽룡 시를 인용했다. 공정위 주최 ‘대·중소기업 간 상생 방안 발표회’ 자리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11개사가 상생기금 조성 계획 등을 차례로 내놓자 김 위원장이 ‘강평’하면서 한 말이다. 대기업에 숙제를 내주고 검사하는 자리 같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재벌들 혼내주고 왔다’고 했던 그가 굳이 ‘백성들의 피’ 운운한 의도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 위원장, 김기식 금융감독원장까지 참여연대 출신 3대 ‘재벌 저격수’가 함께 포진하자 기업들은 혹여 미운털이 박힐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순환출자를 죄악시하는 문 정부의 엄포에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해소에 나서고 있지만, 헤지펀드 공격에 노출될 우려는 더 커졌다. 설비투자와 유망기업 인수 등에 썼다면 성장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돈이다.

기업은 성장 엔진이자 일자리 근원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을 내건 문 정부는 애써 기업의 역할을 외면한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직접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25조 원의 일자리 예산을 쏟아 넣고, 올해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는데도 3월 고용실적은 재난 수준이다. 문 정부가 이제 기댈 곳은 혁신성장뿐인데, 규제 장벽에 갇혀 있다. 말로는 규제를 완화한다면서도 규제프리존법, 서비스산업발전법 처리는 외면한다. 문 대통령도 의욕을 보인 ‘규제 샌드박스법’은 인허가 관문이 추가되면서 취지가 무색해졌다. 문 정부의 재벌개혁론을 뒤집으면 대기업 규제론이다. 혁신 성장은 필요하지만, 대기업을 도와주지는 않겠다는 인식이 규제정책의 이율배반을 낳는다. 그런 사이 한국의 혁신 역량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도 한참 뒤처지고 있다.

법령 규제도 문제지만, 보이지 않는 규제가 더 무섭다고 기업인들은 말한다. 공무원 입맛대로 재단하는 고무줄 규제, 민원인을 교묘하게 애먹이는 인허가 규제가 그렇다. 요즘엔 문 정부 지향 이념을 기업활동의 우선 잣대로 삼는 기류다. 이른바 ‘코드 규제’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기밀이 담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기어코 공개하겠다는 고용부 처신은 상식 밖이다. 나라의 핵심 성장축이면서 경쟁국의 추격이 거센 산업이라면 일말의 유출 가능성도 차단하는 게 국익을 챙겨야 할 정부 책무다. ‘재벌 삼성-친노(親勞) 정부’ 코드의 소산은 아닐 것으로 본다. 하지만 기업들이 코드 그림자에 짓눌려 역동성을 잃은 채 숨죽이고 있다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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