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여행상품 베끼기’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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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문화부 부장

매주 토·일요일 오전 6시 30분쯤 서울 덕수궁 앞 세종대로 변에는 관광버스가 길게 늘어선다. 여행사가 모집한 손님을 태우고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관광버스들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 옆에 버스가 한 줄로 섰는데, 이제는 두 줄이다. 그만큼 여행사 관광버스 상품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출발하는 여행상품 가격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경남 창원으로 가는 당일치기 진해 벚꽃여행 상품 가격이 2만3000원. 10년 전쯤 덤핑 여행사조차 3만2000원을 받은 상품이었다. 더 싼 것도 얼마든지 있다. 지난겨울 태백산 눈꽃축제로 가는 당일 여행상품 가격은 1만4000원이었다. 이것도 10년 전에 2만9000원을 받던 것이었다. 물가는 다 올랐는데 여행상품 가격은 10년 전의 절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여행상품의 가격 폭락을 몰고 온 것은 ‘소셜커머스’다. 한 푼이라도 더 싼 소셜커머스 여행상품에 고객이 몰리면서 여행사들의 출혈경쟁이 도를 넘었다. 여행상품이라고는 하지만,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다 보니 교통편 제공 외에 다른 서비스는 없다. 심지어 인솔자까지 없어 버스에 손님만 타고 출발하기도 한다. 인솔자도 없이 그저 왕복 교통편만 제공하는 것을 과연 ‘여행상품’이라 할 수 있을까.

사정이 좀 낫다는 숙박상품도 품질이 아닌 ‘가격’으로 경쟁하는 건 마찬가지다. 잘 팔리는 상품을 개발해도 곧바로 ‘베끼기’ 상품이 나오니 새로운 상품을 찾거나 만들려는 노력은 없다. 새로운 여행상품이 없고,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여행사들이 똑같은 일정으로 거제의 외도에 가고, 평창의 양떼목장에 가는 건 그래서다.

이게 지금 국내관광 산업화의 현주소다. 왜, 이렇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싼값에 여행을 다닐 수 있어 좋은가. 이렇게라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면 국민 여행 총량이 늘어나니 바람직한 걸까. 과연 이런 게 ‘쉼표가 있는 삶’이고 ‘사람이 있는 관광’일까.

국내관광 활성화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업들의 산업화가 먼저 필요하다. 그러려면 패키지 여행 등의 육성을 통해 국내관광 여행사를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여행사들이 몸집을 키우고 튼튼해지며, ‘쉼표가 있는 삶’을 말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이 만들어진다. 내국인 상대의 여행사 상품을 살리지 않고서는 국내 관광기업의 육성은 요원하다. 그렇다면 여행사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만든 여행상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배타적인 독점 판매권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참고할 만한 것이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2001년부터 금융 분야의 신상품에 적용하는 ‘배타적 사용권’ 제도다. 심사를 거쳐 독창적이면서 고객 편의도 제고하는 신규 금융상품으로 인정받으면 일정 기간 동안 다른 회사들이 ‘베끼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2017년 한 해 동안 해외여행을 위해 출국한 한국인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2650만 명이다. 이렇게 나간 한국인이 나라 밖에서 쓴 돈이 무려 29조 원에 달한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막대한 서비스수지 적자가 아니라 내국인들이 지난해 그만 한 돈을 여행에 소비할 만큼의 여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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