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곳 없는 기업들>경제단체도 ‘官治시대’ … 기업 목소리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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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부회장단 관료출신 기용
“위상 축소에 정부 입김 취약
애로사항 잘 전달될까 걱정돼”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대부분 기업이 대관 기능을 축소했는데 그나마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던 경제단체들도 위축돼 답답하기 그지없다.”

최근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사회적 소통 역할을 맡아온 경제단체들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거세다. 경제단체들은 그동안 경제 현안에 대해 기업의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공동 대응해 왔으나, 최근 여러 악재로 무력화되면서 정부와 기업 간 소통 창구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기업, 기업인을 회원으로 둔 경제단체의 상임부회장단이 관료 출신들로 채워진 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가 국정농단 사태 이후 부쩍 위축된 와중에, 그나마 쓴소리를 내던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의 상임부회장에 관료 출신이 기용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와 한국무역협회(회장 김영주)는 전통적으로 관료 출신들이 상임부회장을 맡아왔으나 노사 관계에서 경영계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인 경총 부회장마저 관료가 맡자, 재계에 ‘관치 시대’가 시작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같은 인적 구성으로 재계는 기업의 목소리가 쪼그라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경제단체는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인사들을 선호했다.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나 민원을 전달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것이 경제단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들이 대관 기능을 줄이면서 사실상 기업 의견을 정부 측에 전달할 수 있는 곳은 경제단체가 유일하다”며 “정부 입김에 취약한 관료 출신들이 창구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정부와 기업 간 소통 부재가 심해질 경우 경영 현장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면서 기업과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에도 부작용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의 통상 분쟁이 대표적이다. 최근 불거진 통상 문제와 관련돼 정부와 재계의 팀워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 정부 인사 접촉과 미국 의회 설득 작업에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부와 재계의 공조는 거의 없었다.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등도 영세한 기업 입장은 반영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