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남북정상회담前 확성기 방송 중단은 성급

대북 확성기 방송과 ‘삐라’는 김정일·김정은 세습체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비군사적·비물리적 대북 비대칭 전력이다. 그래서 김정일 시대에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면전심리전의 검은 내막’(삐라와 라면 등 물품에는 세균과 방사선 처리가 돼 있어 쳐다보면 눈이 멀고, 먹으면 장이 꼬여 죽는다는 내용)이라는 영상물을 만들어 북한 주민과 군에 특별교육을 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자 급기야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대북 심리전 중단을 요구했고, 이를 들어줌으로써 남북 정상회담 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6·15선언의 상호비방중지의 실천이란 미명하에 2004년 남북장성급 회담에서 군이 반대한 것을 청와대 지시로 중지하게 됐다. 그러다 연평도 포격과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4차 핵실험의 대응 조치로 일부 재개한 대북 심리전에 대해 김정은은 2016년 5월 7차 당 대회 결정에서 “상대를 자극하고 비방·중상하는 심리전 방송과 삐라 살포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군사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김정일·김정은의 민감한 반응은 대북 심리전이 북한체제 유지에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러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삐라 살포는 정전협정에서 적대행위에 포함되지 않는 영역이다. 더군다나 대북 심리전은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를 날조하거나 중상모략하지 않는다. 다만, 북한 내부에 보도되지 않는 정상회담 소식이나, 일기예보 등 실생활 정보, 자본주의 시장경제, 한류, 민족사, 인간의 보편적인 삶,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 등과 관련된 사실 등 북한 주민이 스스로 인간답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상회담도 주고받는 협상이다. 비핵화 정상회담의 마지막 협상 카드로 주고받아야 할 ‘대북심리전’을 먼저 내줘 버렸다. 심지어 비무장지대 최전방 감시초소(GP) 철수까지 검토한다고 한다. GP는 최전방의 적 상황을 감시하며, 공격자를 조기에 발견해 저지하고, 적의 초기 공격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신속히 반격하기 위한 핵심 방어진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 주고받아야 하는 카드, 또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를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가 이 정도 양보하면 북한도 비핵화를 양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될까 봐 걱정스럽다.

1991년 11월에 노태우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비핵화를 선언하면 북한도 상응한 대가로 핵 개발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김칫국 먼저 마시는 모험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남북한 화해 무드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대북 심리전도 수차례 중단했지만,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핵 무장화, 대남도발 강화 등 오히려 반대였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 수준의 비핵화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대북 심리전 중단 및 GP 철수 검토는 원상 복귀돼야 한다. 설사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한반도 안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윤규·합참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