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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World & Idea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2일(水)
니카라과 4·19와 진보 영웅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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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내전 이후 최대 유혈 사태 확산
니카라과 운하 地經學的 관심
민중영웅에서 독재자로 전락


태평양과 카리브해 사이의 지협(地峽)에 위치한 인구 600여만 명인 나라, 니카라과에서 1994년 2월 내전 종식 이후 최대 유혈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수도 마나과의 주요 대학 곳곳에 반정부 학생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다니엘 오르테가(73) 대통령-로사리오 무리요(67) 부통령 부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학생은 화염병은 물론 사제 박격포까지 준비한 채 끝까지 저항할 것을 외치고 있다. 학생 시위대는 스스로 ‘4·19 학생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지난달 19일 반정부 시위에서 첫 학생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니카라과 시위 사태는 지난달 16일 정부가 사회보장기금(INSS)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19% 고용주 분담금을 22.5%로, 6.25% 노동자 분담금을 7%로 올리면서 월 연금 수령액은 5% 삭감한다는 방안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19일 경찰과 집권 여당 산디니스타 청년당원 오토바이 부대가 대학생 시위대를 집단 폭행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 사망자가 나오면서 시위가 격화됐다. 니카라과 인권위원회는 최소 63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됐으며 160명 이상이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에 니카라과 정부는 서둘러 INSS 개혁안 포기를 선언했으나, 학생 시위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권 타도 투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니카라과 ‘4·19 학생운동’은 비(非)조직적이고 자연발생적일 뿐만 아니라, 현 정부를 대체할 권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커다란 한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 니카라과 학생들이 부패와 독재의 화신으로 여기는 오르테가 대통령은 1980년대 중남미 진보혁명의 아이콘으로서, 당시 한국 학생운동권에서도 민중혁명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소모사 일가 장기독재를 종식시킨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의 주역인 오르테가는 1984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미국의 금수 조치와 콘트라 반군과의 내전, 그리고 기술인력의 대량 이민으로 경제 위기에 봉착하면서 1990년 대선에서 패배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주변 예상과 달리, 순순히 정권교체에 응하고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줘 서구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정권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집권하면 같은 좌파 정권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 석유를 싼값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고 국민을 설득한 오르테가가 2006년 11월 대선에서 다시 승리할 수 있었다.

권력을 빼앗겼다가 다시 잡은 오르테가는 권력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우선 경제 정책에선 급진좌파가 아닌 온건 좌파의 노선을 취하며 중소 상공인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강력한 산디니스타 혁명군 조직을 기반으로 군과 경찰 등 사법 권력을 장악하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대중의 환심을 획득해 나갔다. 37.99% 득표로 재집권했으나, 지지도가 80% 가까이 치솟았다. 그리고 급기야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헌법 수정을 단행하더니 2016년 11월 대선에서는 부인 무리요를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재집권 이후 연속 3번 대통령에 당선됐다.

니카라과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니카라과 운하 때문이다. 오르테가 정부는 중국의 HKND사(社)와 계약을 체결하고 2014년 12월 태평양 연안의 브리토강(江)에서 카리브해 연안의 푼타고르다강(江)으로 이어지는 길이 278㎞ 니카라과 운하를 착공했다. 총 건설비 500억 달러는 모두 HKND가 책임지는 대신에, HKND는 니카라과 정부에 매년 1000만 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100년 동안 운영권을 갖기로 했다. 파나마 운하에 대항하는 운하를 중국 자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경학(地經學)적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이 문제에 미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 확장 공사로 그 경제적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파나마 운하는 2016년 6월 확장 개통됐으나, 니카라과 운하가 예정대로 2019년까지 완공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또, 공사 과정에서 오르테가 일족들의 비리 문제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으며, 운하 부근 거주 원주민 이주 문제와 니카라과호(湖) 오염 등 환경문제가 대대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오르테가 정권 위기의 근원은 경제 문제에 있다. 니카라과가 버틴 것은 베네수엘라의 오일 달러 지원 덕분이었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베네수엘라 스스로 코가 석 자나 빠진 상태다. 이에 그동안 선심으로 베풀던 사회복지가 지속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념적 후원자였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도 저세상으로 떠났다. 청년 혁명가에서 늙은 독재자로 전락한 오르테가의 모습에서 ‘악마는 타락한 천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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