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60代주부서 CF모델로… 인생 뭐 있나요? 들이대세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니어모델로 활동 중인 이순풍(왼쪽) 씨와 고혜정 씨가 비상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씨는 대기업 퇴직, 고 씨는 전업주부로 각자 다른 삶을 살았으나 CF모델, TV 프로그램 보조출연자 등 새로운 도전으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서울강남시니어클럽

40년 집안일 하다 ‘제2의 인생’
키 작고 허리 굽어도 모델 뽑혀
나도 할 일이 있단 생각에 흐뭇

아르바이트 主禮라고 무시해도
喪家는 피하는 등 철칙 꼭 지켜
움직여야 기회잡는다 알리고파

“옛날엔 그랬잖아요. 여자가 직장에 취업해도 결혼하면 그만둬야 하는 줄 알았죠…. 저도 시어머니 모시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40여 년간 전업주부로만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나이 들고 아이들까지 품을 떠나니 이제는 저를 위해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찾은 게 시니어모델이죠. 시어머니가 올해 백수(白壽·99세)이신데 절 많이 응원해 주세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고혜정(66) 씨는 강남구 논현동 주민센터에 있는 서울강남시니어클럽 활동으로 삶의 의미와 활력을 얻었다. 그가 서울강남시니어클럽을 접한 건 약 5년 전. 사회복지법인인 자광재단을 통해 개별 봉사활동을 하다가 클럽의 다양한 ‘사업’을 알고 인연을 맺었다.

서울강남시니어클럽은 보건복지부 지정기관으로, 전국 144개의 클럽 중 하나다. 자광재단이 주관해 2002년 11월부터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추진해왔다.

고 씨는 처음엔 여러 사업 중 ‘알록달록 종이접기’에 참여했다. 아무런 ‘경력’이 없는 고 씨로선 가장 수월해 보이는 사업이었다. 종이접기 전문강사 교육을 받은 후 정기적으로 지역 내 보육시설이나 교육기관에 나가 봉사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건강이 더 나빠지면서 시간을 맞춰서 해야 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1년 만에 활동을 접고 집에서 시어머니를 돌보던 중에 다시 눈에 들어온 게 시니어모델. 처음엔 CF모델, TV 프로그램 보조출연자 등은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일처럼 보여 주저했으나 차츰 모델 활동의 매력에 빠지면서 벌써 4년째 각종 CF와 사진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생각보다 섭외가 많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꾸준히 뭔가 할 일이 생겨요. 처음 출연했던 게 MBC 예능프로그램 ‘시간여행-그땐 그랬지’였죠. 우체부 아저씨에 얽힌 사연을 말하는 보조출연자 역할이었어요. 떨렸지만 막상 하고 나니 재미있더라고요.”

이후 고 씨는 TV 건강프로그램의 보조출연자, 재연프로그램의 연기자 등을 거쳐 CF 광고에도 출연했다. 보험회사 등에서는 고 씨 같은 연령대의 광고모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제법 있다. 물론 아직은 스쳐 지나가는 역할에 불과하지만 일한 만큼 수입도 생기고 무엇보다 ‘내가 할 일이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

“전업주부 출신으로 전공자도 아니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시니어클럽을 통해 모델 활동을 할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죠. 행여 ‘나는 키가 작으니까 안 될 거야, 허리가 굽어서 어려울 거야’ 이런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다 그런 모델들이 필요한 데가 있더라고요. 시니어모델을 하면서 더욱 활동적인 사람이 됐어요. 우쿨렐레도 배우고, 아이들 앞에서 아동극도 해요. 돈벌이를 떠나 다양한 만남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좋아요. 다시 하는 인생 공부죠.”

이순풍(55) 씨도 시니어클럽을 통해 올해 초부터 시니어모델을 하고 있다. 이 씨는 50대 초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퇴직한 것은 그만큼 더 빨리 ‘은퇴 후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다. 3년간 대학원에 다니며 명상심리학 분야 석사 학위 취득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TV 광고에 출연하면서 모델의 세계에 눈을 떴다. 올해 초 마침 접하게 된 시니어클럽의 시니어모델 모집공고를 보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곳에만 시니어모델로 100분 가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디션 경쟁이 제법 치열해요. 저는 회사생활 할 때 부업으로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한 게 지금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KBS ‘생로병사의 비밀’의 보조출연자,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내 몸 사용설명서’ 등에 출연했어요. 이곳에서 활동하는 분 중 가장 막내라서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것처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 씨는 환갑 즈음 시니어들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게 새로운 꿈이다. 이를 위해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시니어모델도 직업 아카데미 설립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분야를 알아야 좋은 상담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내 처지에 무슨 모델이야 하며 포기부터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2의 인생에 용기 있게 도전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다시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감을 얻었어요.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시니어클럽에는 전문 주례를 양성하는 주례클럽도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례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인 어심택(왼쪽) 씨와 송영복 씨.

주례클럽은 갈수록 실용적이고 간소화하는 결혼 문화에 부응해 전문 주례 인력을 기르고 파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치·교육·문화 등 각종 전문직에서 퇴직한 지역 내 시니어들이 모여 전문강사의 교육을 받은 후 현장에 나가고 있다.

방배동에 사는 어심택(69) 씨는 주례클럽의 단장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으로 3년째 클럽 회원들을 이끌고 있다.

어 씨는 원래 서울시청 교통국 공무원이었다. 수십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지난 1995년 퇴직했다. 이후에도 5년간 한국교통기술사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전문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2000년이 넘어서부터는 설 곳을 잃었다. 50∼60대 중장년층이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할 수 없이 여느 퇴직자처럼 등산이나 지인과의 만남으로 소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평생 직장생활이 몸에 밴 어 씨는 일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자신이 배운 것들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전문 주례다. 그동안 500회 이상 결혼식장 연단 위에 섰다.

“아무리 직업으로 하는 주례라지만 나름대로 철칙을 세워뒀어요. 우선 몸부터 청결히 하는 거죠. 주례 보는 전날엔 목욕재계해요. 옷도 새것으로 준비하고 넥타이는 젊어 보이도록 밝은색으로 매요. 무엇보다 주례사에 신경을 씁니다. 남의 인륜지대사를 대충 할 수는 없잖아요. 뻔한 주례사 말고 기억할 만한 것, 지루하지 않게 짧지만 강렬한 주례사를 위해 원고를 수도 없이 고쳐 씁니다.”

어 씨는 주례사를 하는 데 5분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원고를 보지 않는다. 수십 번을 고쳐 쓰면서 아예 통째로 외워버리기 때문이다.

“자주 쓰는 주례사는 이런 겁니다. 부부 싸움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쉽게 생각하진 마세요. 차라리 싸워야 하면 실컷 싸우세요. 그리고 반드시 원인을 추적하세요. 아마도 그 원인은 치약 짜는 방법이 다르다든지 하는 매우 사소한 문제였을 겁니다. 결혼생활은 엉뚱하면 잡음이 납니다. 라디오 주파수 맞추듯이 서로 맞춰 사세요.”

상계동에 사는 송영복(66) 씨도 전문 주례로 꽤 알려져 있다. 중학교 교장 선생님을 끝으로 퇴직해 그동안 수많은 결혼 서약 커플의 ‘증인’이 됐다.

송 씨 역시 교직에 있으면서 현장에서 주례 경험을 많이 쌓았다. 지인과 제자들의 결혼식에서 거의 주례를 봤다.

그러나 주례클럽의 전문교육을 받으면서 몇 가지 팁을 얻었다. 주례사는 무엇보다 신혼부부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발성법과 시선 처리였다.

“교직에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 주례 볼 일이 많았죠. 하지만 그때는 제가 내키는 대로 했다고 할까요. 신혼부부 당사자들보다는 그 집안이나 하객들을 배려한 주례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혼부부이고, 여기서는 그에 맞는 주례사와 시선 처리를 배웠습니다. 또 전문성우들이 발성법도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주례를 통해 얻는 수입은 사실 크지 않다. 서울 지역의 경우 10만 원 수준. 서울 외 지역에는 거리에 따른 교통비가 별도로 붙는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주례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상대적으로 주례가 설 곳은 줄어드는 측면이 있어요. 꼭 돈벌이를 위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전문 주례로선 아쉬운 대목이죠. 지금 같은 한여름도 결혼 비수기입니다.”

또 전문 주례를 무시하는 시선도 안타깝다. 간혹 주례를 아르바이트 학생 정도로 대접하는 곳도 있다. 돈을 받고 하는 입장에서 주례의 권위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씁쓸한 마음뿐이다.

“사람들이 전문 주례는 그냥 대충 하는 줄 아는데 안 그래요. 어 선생님은 목욕재계하신다고 했죠. 저는 주례를 맡은 날 전에는 상가에 안 가요. 흔히 결혼식 전에 상가에 가면 ‘궂긴다’(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미신이지만 행여 남의 행복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돼 삼가요. 이런 걸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송 씨는 “그래도 저는 서울강남시니어클럽 등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행복한 거죠”라며 “일하고 싶어도 일할 거리가 없어 방황하는 시니어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시니어클럽이 좋은 토양이 되길 바라고, 정부의 노인정책과 복지정책도 그런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쪽으로 더욱 발전하길 바랍니다”고 당부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