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국민연금 ‘脫정치’ 화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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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사회정책학

지난 20년 간 보험료 9% 지속
인상 가능성 언급에 논란 재연
급격한 변화보다 보완이 중요

당장은 효율성·독립성 높여야
정치 외풍에 운용본부장 空席
연금 개시연령 조정도 불가피

8월 국회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제4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서 기금이 지난 3차 재정 추계에서 계산된 것보다 3년 정도 이른 오는 2057년에 소진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여 년간 9%로 머물러 있는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낮은 수준의 국민연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2028년에 평균소득 200만 원으로 국민연금에 40년 동안 가입한 사람의 경우 80만 원을 연금으로 받게 되는데, 노후소득을 보장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과 소득 보장 기능을 강조하는 두 가지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으나, 논쟁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용어가 남발되는 점은 우려스럽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기금이 ‘깡통’이 된다는 무책임한 표현이 사용되는가 하면, 국민연금이 아니라 ‘푼돈연금’이라는 비아냥 조의 지적도 있다. 각자의 논거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말들이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 제고나 소득 보장성 확보에 도움이 되긴커녕 어려움만 초래할 뿐이다. 재정 추계 때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논쟁을 반복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자가당착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앞으로 장기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야 하는 청년층의 입장에서는 미래에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유지되고 경제가 돌아가는 한, 수급자가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인 재정 상태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가 수행되고 있다.

이번 국민연금 개혁의 기본 방향으로는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보험료율을 급격히 인상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올리는 게 좋다. 소득대체율도 갑작스럽게 인상하기보다는 지난번 개혁에서 계획했던 일정을 기본으로 하여 재정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게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신중하게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고, 소득 보장성을 제고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고 국민연금을 개혁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법률로 국민연금의 지급을 보장하는 방안은 기금 운영의 경직성은 높이는 반면, 추가적인 안정성을 제고하진 못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현시점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제도 개선 사항은 국민연금공단의 효율적 운영과 정치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다. 지난해 7.26%였던 기금의 운영수익률이 1.4%로 급작스럽게 추락한 것은 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이는 기금 운영의 컨트롤타워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거의 1년간 공석(空席)으로 남아 있으면서 생긴 불가피한 결과다. 이 같은 공백 사태는 기금운용본부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한 일이 불거져 인사가 늦어진 탓도 크다.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공단이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제도 개선과 보험료율 조정으로 자연스럽게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크게 제고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이번 국민연금 개혁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가 유례없이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일하면서 보험료를 내고, 10∼15년 정도 연금을 받는다는 공적연금 제도의 기본적 전제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불가피하게 연금개시 연령을 65세에서 점차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연금개시 연령 인상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 점차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도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지만, 정부와 기업들도 고령인구가 생산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