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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미숙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28일(金)
종전선언과 ‘지옥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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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北 종전선언 집착, 遺訓 가능성
김정일, 先교전상태 종식 주장
핵협상 本末顚倒 한·미 균열도

종전선언, 6·25책임론일 수도
정전체제가 한반도 평화 유지
김정은, 비핵화로 경제 살려야


남북정상회담과 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 채 종전선언 논의만 무성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는 65년째 정전상황이고 전쟁 종식은 매우 절실하다”며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연내 종전선언을 공식화한 데 이어 평양회담에서도 재확인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24일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종전선언 문제를 논의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듯하다. 청와대는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한 선제 조치로 하자는 입장인 반면, 백악관은 비핵화 이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유난한 종전선언 집착에 대해선 정부 당국자들도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몇 가지 해석은 가능하다. 첫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훈 준수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것일 수 있다. 2007년 정상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종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하나의 시작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교전 상태가 끝나야 핵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빙하는 움직인다’에 나오는 얘기다. 둘째, 비핵화 협상 물타기일 수 있다.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한국 내 많은 논란은 물론이고, 남·북·미 간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피하기 위한 본말전도용 꼼수일 수 있다. 셋째, 종전선언이 안 되더라도 문 대통령과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남남갈등 및 한·미 동맹 균열을 꾀할 수 있어 북한으로서는 밑질 게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 기류는 강경하다. 미 의회는 물론 싱크탱크 인사들도 한결같이 북 비핵화 전 종전선언 강행 반대론을 펴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이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신고를 할 경우 종전선언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다면 의외의 국면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종전선언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북한은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결정을 했을 때 하마스가 “지옥의 문을 연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종전선언은 한반도판 지옥의 문을 여는 것일 수도 있다.

1·2차 대전기에 맺어진 다자간 평화조약이나 2차 대전 후 체결된 양자 간 평화협정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종전선언 조항과 둘째, 전쟁으로 발생한 문제 정리 조항, 셋째, 전후 새로운 정치·경제 질서를 설정하는 조항이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의 서문이나 1장이다. 따라서 전쟁상태의 종식을 대외에 밝히는 종전선언을 하고 나면, 곧바로 전쟁으로 발생한 문제 해결, 전후 질서 설정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김정은에겐 지옥의 문일 수 있다. 여기엔 배상, 청구권, 재산반환, 전범처리, 전쟁포로, 억류자 문제 등과 육·해상 분계선, 생화학무기 금지, 재래무기 군축 등이 포함된다. 6·25는 승자도 패자도 없지만, 도발자는 어디까지나 김일성이고, 남침에 의한 전쟁이라는 게 국제적으로 공인된 만큼 김 위원장은 전쟁책임과 배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와 억류자 문제에 대한 논의도 포함돼야 한다. 더 나아가 정전체제에서 사실상 해상분계선으로 인정돼온 북방한계선(NLL) 준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후 65년째 지속되고 있다. 역사상 가장 긴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정전협정이기도 하다. 정전협정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동북아의 발칸반도로 일컬어진 한반도에 평화가 일상화했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가 있었기에 평화가 지켜졌다. 역설적으로 정전체제 덕분에 평화가 지속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켜놓은 채 평화를 위해 종전을 선언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전선언을 원한다면, 그간의 해상 및 육상 도발,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평화 파괴 행위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김정은이 지옥의 문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종전선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비핵화에 집중하는 게 낫다. 그게 북한 경제를 신속히 회생시키는 유일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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