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문제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일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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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실천’과 ‘좋은 일자리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다.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조성’의 기치 아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과 하도급 노동자의 보호 정책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 중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이미 상당 부분 실현됐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방패막이로 남아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의 고통을 견뎌 내고 있다. 임시직·일용직·파견 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월급 격차는 7년 새 161만 원에서 216만 원으로 벌어졌다는 보도도 있다. 더욱이 청년실업률이 10%대를 넘어섰고, 고용보험 실업급여 수급자들도 증가 일로다.

하도급 노동자와 관련한 불법 파견 논란도 오랜 숙제다. 대다수가 적법도급이냐 불법파견이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 논란에 법원의 판단도 한술 거든다. 같은 사건에서 법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기도 하고, 적법도급의 개념을 점점 축소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일부 하급심에서는 원·하청 간에 생산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고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도입한 전산 생산관리 시스템(MES)을 불법파견 요소로 보았다. 전산을 통한 원청의 업무 지시라는 논리다. 도급을 통한 분업화·전문화는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키워드가 된 지 오래고 MES는 이를 위한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인력 활용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법원 판단이 그렇지 못해 불안하기 그지없다.

저출산·고령화·양극화 극복이라는 우리와 똑같은 국정 과제를 안고 있던 일본에서는 최근 혁신적인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잔업시간 상한 규제,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 해소를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의 도입, 고수입 일부 전문직에 대한 근로시간 규정 적용 제외 등이 개혁 입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일본은 노동관계 문제를 우리와 달리 본다. 일본의 개혁 입법은 ‘강한 경제의 재생’을 위해 ‘일하는 방식을 개혁’하는 정책의 하나로 나온 것이다. 우리처럼 ‘노동자 보호만을 위한 노동 입법’이 아니다. 경제의 재생을 위해 노동력을 확보하고 노동 생산성을 제고(提高)하는 것이 일본의 성장을 지속하는 데 ‘반드시’ 필요해 개혁 입법을 단행한 것이다. 일본은 세계적 추세에 따라 ‘고용 유연성 확보와 고용 형태 간 불합리한 차별 개선’을 택했다. 고용 유연화는 그대로 두면서도 똑같은 노동을 하면 차별 없이 똑같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을 만든 것이다.

반면, 우리는 정규직을 모든 문제의 해법으로 본다. 하지만 문제는, 노동시장에서 기대 수준만큼의 정규직 일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 일할 곳이 있느냐가 문제다. 그런 점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일자리가 생성되도록 하고, 그 일자리에서 똑같은 노동을 하면 그에 따른 대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저출산·고령사회에서 노동력 확보와 노동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의 재생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방법의 하나다.

파견법이 지금은 파견 노동자를 위한 법으로만 작동하지만, 사실 외환위기 때 노동력의 유연한 활용을 위해 제정됐다. 우리도 일본처럼 노동력의 유연한 활용과 노동자 보호를 함께 챙기며 갈 수 있다. 노동자 보호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저출산·고령사회에서 노동력 확보와 노동생산성 제고를 통한 경제의 재생을 위하는 것이다. 그 경제의 재생은 곧 일자리를 만들고 실업을 방지해 국민의 생존을 보장한다. 법을 만들거나 적용하는 이들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