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자치분권>하루 민원전화 100여통에 일정 수십 개… “매일 고군분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의회 지방분권 TF 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태 서울시의원이 의원회관에서 주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행정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上) 보좌 인력 없이 홀로 뛰어야 하는 지방의원

상임委·조례발의… 할일 태산
1주일에 4일씩 회관서 쪽잠
그래도 버거워 議政에 지장

직원1명이 의원3명 입법지원
“정상적인 의정활동 위해서는
전문성 갖춘 보좌 인력 시급”

올해 6월 13일 서울 시민들은 110명의 시의원을 선출했다. 25개 자치구 424개 동에서 지역구의원 100명과 비례대표 의원 10명이 뽑혔다. 직접 투표해 선출했지만 정작 내가 사는 곳에선 어떤 의원이 활동하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의원들은 의원들대로 고충이 있다. 시의회 구조상 조례 발의와 상임위 활동, 주민 민원 청취 등 모든 일을 홀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 세금으로 9명의 유급 보좌진을 둘 수 있지만, 시의원은 서울시의회 사무처 직원들이 조례 발의 전 사전 타당성 조사를 해주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이 문제는 지방의원들이 느끼는 공통적 어려움이자 설움이다. 올해 9월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의 ‘자치분권 종합계획’ 공개로 분권이 가시화된 시점에서, 지방의회 역량을 키우고 생활밀착형 의정활동 지원을 위해 유급 보좌관제를 도입하고 의회 업무를 전담하는 공무원 직군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자치분권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의회가 그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인호(뒷줄 왼쪽 첫 번째) 서울시의원이 개인택시 기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기사 복리 증진에 대한 건의를 받고 있다.

◇‘일인다역’…고군분투하는 시의원들 = 18일 김정태 시의원의 하루는 오전 6시에 시작됐다. 3선이지만 초선 의원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김 의원은 지역구인 영등포에서 정책회의와 교통캠페인 등 3∼4개의 일정을 소화한 후 9시 30분에 의원회관으로 출근했다. 집무실 좌석에 앉을 찰나에 주민 방문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공원 내에서 열리는 음악회 행사에 음향장비 반입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청 등 다양한 민원을 쏟아냈다.

김 의원은 오후 서울시 공무원과 민원 관련 협의를 하고 축사 연사로 초청받은 행사 참석, 환경정화 캠페인 참여 등으로 하루를 끝냈다. 그는 “오늘 하루에 받은 전화만 100통 가까이 된다”며 “1주일에 4일은 의원회관에서 쪽잠을 자면서 일하는데도 업무가 버겁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서울시의회가 구성한 지방분권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아 지방분권 동력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역시 3선인 김인호 시의원의 사정도 앞선 김정태 의원과 대동소이하다. 19일 의원회관에 출근한 그의 방에는 다음 달로 다가온 행정사무감사 관련 업무보고 자료들이 1000쪽 가까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출근해 10여 분 자료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고충을 호소하거나 현장 방문을 요청하는 전화들이 쏟아졌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인 김 의원은 이날 공공미술작품 설치에 과도한 세금을 쓰는 서울시 행정을 분석하려 했지만 그러기 무섭게 지역구인 동대문구로 떠나야 했다. 그는 “최소한 입법 담당 1명과 민원 담당 1명 등 2명의 보좌 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지금은 의원 한 명이 홀로 조례 발의·민원 청취·예산 심의 등 모든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상적으로 의정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좌인력 충원과 인사권 독립이 관건 = 앞선 두 의원의 사례처럼 현행 제도하에선 지방의회가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심의하고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어렵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의원 보좌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배치하고 의회 기능을 뒷받침하는 사무처 인사권과 예산편성 자율권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과거부터 시의회 안팎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서울시는 2016년 4월 시의회 입법보조원으로 일할 ‘시간선택제 임기제공무원’ 40명을 채용하겠다고 공고하면서 보좌 인력 충원에 나선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법률에 근거가 없는 지방의회 의원 개인별 유급 보좌 인력을 뽑으려 한다”며 채용 공고를 직권으로 취소했고 1년여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이 행자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법 제91조 2항은 ‘지방의회 사무직원은 의장 추천에 따라 그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탄생한 ‘서울특별시 지방공무원 정원조례’ 제2조 제4호는 시의회 사무기구의 정원을 300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시의 조직개편 등으로 시청과 시의회 간 정원의 변동이 있을 때만 시장이 조례 수정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심의를 받을 수 있다.

시의회로부터 견제받아야 하는 단체장이 시의회 사무처 직원 인사를 관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보통 순환 보직을 경험하는 공무원들은 1∼2년 정도 시의회에서 근무하고 복귀하기 때문에 의회 관련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하기 어려운 상황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정태 의원은 “법에서 보장한 단체장의 권한이 막강한 상황에서 보좌 인력도 없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사무처 인사도 의회 자체적으로 할 수 없다”며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보좌 인력과 의회 전문 직군을 신설하고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의장에게 줘 의회 사무처와 의원이 의회 업무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