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학, ICD 편입… ‘韓醫學의 국제 표준화’ 시작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학회 임원들이 지난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침술학회(ICMART) 학술대회에서 ICMART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최문석 한의협 부회장, 친 챈 ICMART 사무총장, 콘스탄티나 테오도라투 ICMART 회장, 최도영 한의학회장, 이승훈 경희한의대 교수, 안병수 한의협 의무이사. 한의사협회 제공

■ WHO-FIC 연례회의서 ‘한의학 위상’ 인정

국내에서 쓰는‘韓醫學 분류표’
WHO, 2016년부터 일부 도입

내년 WHO 총회 승인받으면
국제질병분류표에 본격 사용

치료 효과 기반한 한국 침술
근거없는 형이상학 원리 넘어
임상적용 입증서 中·日 앞서

세계 의료계가 동양의 전통의학을 의료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한의계가 그 중심에서 역할을 하고 있어 국내 전통의학의 위상이 제고될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년에 확정 예정인 ‘국제질병사인분류(ICD)’ 제11차 개정판에 ‘전통의학’ 분야가 새로 포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ICD(The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는 질병이환 및 사망원인을 성질의 유사성에 따라 체계적으로 유형화한 국제분류체계다. 의료 현장은 물론 보험청구나 국가통계 산출에서도 활용된다.

최근 한국에서 열린 WHO-FIC(Family of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네트워크 연례회에서 이러한 내용의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우리나라에서 활용하던 전통의학 분류체계가 이번 국제질병분류 모형에 기본 형태로 제안되면서 국제적 위상이 커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30일 “동양 전통의학이 세계 질병 분류에 진단명으로 한 챕터를 표준화된 명칭으로 자리한다는 것은 그동안 진단명의 통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동양의학을 정리한 매우 중요한 행보”라며 “앞으로 인류는 전통의학 분류가 포함된 국제질병분류를 가지게 된다”고 평가했다.

◇한국 한의계, 국제 표준화 시작 =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분류체계인 ICD는 6차 개정판부터 WHO가 관여하면서 명명됐다. 1893년 사인 목록으로 국제통계기구에서 처음 시작됐다. WHO가 지난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개최한 ‘2018 WHO-FIC 네트워크 연례회의’에서는 ICD 11차 개정판에 대한 내용이 가장 큰 화두였다. 이번 11차 개정판은 5만5000여 개의 부상, 질병 및 사인(死因) 관련 코드를 담고 있다. 각국의 보건 관련 활용계획 수립, 번역 준비, 보건전문가 훈련 등을 목적으로 WHO에서 지난 6월에 발표했으며 이사회를 거쳐 내년 5월 세계보건총회에서 승인받으면 2022년 1월부터 발표된다.

WHO는 2009년 5월부터 국제전통의학분류(ICTM)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통계청·대한한의학회·대한한의사협회에서 참여했다. 당시 한국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의 한의코드(U코드)를 현재의 ICD에 제안했다. 이 모형이 기본이 돼 WHO는 국제전통의학분류를 2016년도에 공식 개발했다. 내년에 확정될 ICD 11차 개정판에는 전체 27장 중 하나의 장인 27장 챕터에 전통한의학 분류를 포함시켰다. 특히 ICD 27장은 형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2011년부터 사용해온 6차 KCD, 2016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7차 KCD와 유사하다는 게 한의계 설명이다. 우리나라 한의사는 이미 2009년 이전부터 별도의 한의분류를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분류체계인 KCD를 프로토 타입으로 개발해 KCD에서는 한의분류를 U코드에 추가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11차 ICD에서는 별도의 장(27장)으로 분리한 것”이라며 “이번 WHO-FIC 연례회의에서도 WHO 담당자들이 한국에서 사용한 경험들을 앞으로 전통의약 분류의 업데이트 근거로 활용하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무대서 인정받는 한의계 = 국내 한의사는 우리나라에선 의사와 갈등이 많지만, 해외무대에선 의사들과 소통이 잘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된 국제침술학회(ICMART·Internationall Council of Medical Acupuncture and Related Techniques)다. ICMART는 전 세계 침술 관련 단체를 대표하는 비영리 학술단체로 80여 개의 단체, 3만5000여 명의 의사가 가입해 있다. 매년 유럽 각지에서 침구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이후 한의학회, 약침학회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ICMART는 2018년 9월 독일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의학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약침학회는 앞으로 4년에 한 번씩 ICMART와 국제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 학회에서는 침 연구와 임상의 새로운 동향을 공유한다. 해외 각국의 의사들은 침 치료의 안전성과 뇌신경계, 말초신경계, 자율신경계, 통증과 마취, 염증 조절 관련, 근골격계, 정신의학, 소아 및 산부인과 적용 등 기전과 각 과별 응용뿐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와 정신을 총괄하는 치료로서의 침술, 국제적 보건 이슈를 고루 다뤘다. 특히 한국의 한의사 강연자들은 침, 약침의 기전과 효능을 전문적으로 연구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송미덕 한의사협회 부회장은 “해외 의사들이 침술을 대하는 자세는 의학 침술(medical acupuncture)로, 침을 치료 도구로 사용하는 한국, 중국, 일본은 그 연구와 활용에서 차이가 있다”며 “한국은 근거가 불충분한 형이상학적 원리를 넘어 해부학적 구조, 치료 효과에 기반한 기전 및 임상 적용을 입증하는 단계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송 부회장은 “국내 한의사와 의사의 갈등은 이러한 한의계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통합의료, 예방 위주의 보건정책이 선진 의료의 유형이라면 한의사의 역량이 이러한 동시대 의료의 한 축이 됨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