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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9년 01월 11일(金)
‘휴머니즘 품은 유머’ 더 나은 사회 여는 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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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는 말했다. “환하게 웃는 자만이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2017년 고려대 입학식에서 응원가를 배우며 환하게 웃는 신입생들. 뉴시스

- 유머니즘 /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

권위주의·가부장적인 韓사회
비웃음·희롱·과시적 미소뿐
일상에 유머 깃들 자리 없어

웃음의 이율배반적 역사 탐구
권력 꼬집어 카타르시스 주지만
타인에 상처주는 폭력 되기도

사람 따스히 보듬어주는 마음이
새로운 존재 만들어내는 유머


한국 사회는 웃음과 유머에 인색하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다지만 오랫동안 웃음보다 예의가 먼저였고 윗사람의 유머에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수단이었다. 최근 들어 유머가 꽤 괜찮은 사람의 주요 덕목으로 떠올랐지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유머란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남들에게 들은 유머를 빼곡히 적고 그걸 옮긴다고 되는 스킬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머란 상황을 포착하는 직관, 유연하고 예리한 지성, 유쾌하면서도 상대를 섬세하게 배려하는 감성, 자유로운 상상력, 여기에 적절한 언어적 표현, 신체적 연기력, 때로는 넉살까지 필요하다. 하지만 유교의 가부장제와 서열 의식, 군부독재의 잔재 그리고 권위적이고 수직적 힘에 의해 움직이는 일상에 유머가 깃들 자리가 없었다. 유머의 토대가 이렇게 척박한 가운데 사람을 업신여기며 쾌감을 느끼는 비웃음, 수치심을 유발하는 희롱, 권력과 지위의 과시적 미소는 곳곳에서 번뜩인다.

‘모멸감’ ‘돈의 인문학’ 등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빚어내는 일상의 문법을 추적해온 사회학자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가 웃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이유다. 척박한 데다 병적인 한국 사회의 웃음. 다른 사람을 모멸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확인하는 감정 사회학을 제시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웃음의 사회성에 주목한다. 목표는 명확하다. 한국 사회에서 웃음의 가능성과 그 진정한 가치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철학, 문학, 뉴스, 방송·영화, 일상의 일들을 샅샅이 누비며 웃음의 기원, 역사, 본질, 효과, 구성 요소와 새로운 가능성 등을 추적해 나간다. 저자의 결론 하나를 먼저 살펴보고 가자면 이렇다. “유머는 스킬이 아니라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변주를 즐기는 정신이다.”

웃음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웃음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어떤 효용이 있었을까.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웃음이 안도감을 확산시키기 위한 신호였고, 오랫동안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달된 소통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안전은 생명 유지의 절대 조건인데 웃음은 물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에서 쉽게 터져 나올 수 있다. 물론 물리적인 안전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도 보장돼야 한다.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샘솟아 번져 나가는 웃음은 억누르기 어렵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 그 에너지로 충전되는 관계는 행복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지표다”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류사에서 웃음은 그리 축복받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18세기 부르주아 문화가 형성되면서 지배층의 개인적 미덕으로 칭송되기 시작했지만, 웃음은 서양 지성·문명사에서 오랫동안 주변부 자리에 머물렀다. 권력, 종교와 지식이 서로 맞물리면서 이끌어온 역사 속에서 웃음의 위상은 왜소했다는 것이다. 권력에게 대상을 상대화시키고, 꿰뚫어 보며 때론 전복시키는 웃음은 껄끄러운 존재다. 재기발랄한 지성과 통제 불가능한 기운은 권력자에게 위협이 될 뿐이다.

역사를 지배한 한 축인 종교 역시 권력이었으니 웃음은 악마의 몫이 됐다. 책에서도 언급됐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종교가 웃음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준다. 소리 내어 웃는 것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마로 속죄를 위해서는 비통한 심정으로 참회하라며 웃음을 금기시했다. 중세 수도원에선 이를 위반하면 단식·채찍질·파문 같은 벌칙이 부과됐다.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의 이데아도 웃음과는 멀었다. 하지만 복음서의 여러 행적을 미뤄볼 때 정작 예수는 매우 유머러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예수가 천국을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할 때나 누군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주라고 가르칠 때 청중은 통쾌한 웃음으로 반응했을 것이고, 당시 유대교 사제들의 권위주의와 바리새인의 허위의식을 꼬집을 땐 카타르시스를 주며 폭소를 이끌어냈을 거라고 했다. 이 이율배반적 웃음의 역사는 웃음이야말로 전복적인 혁명의 씨앗임을 보여준다. ‘위대한 독재자’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웃음거리로 만든 찰리 채플린의 웃음이 바로 전복의 웃음이다. 채플린은 “웃음은 광기에 대항하는 방패”라고 했다.

문제는 웃음이 때론 폭력이 된다는 점이다. 삶의 고통을 잊게 하는 한순간의 기쁨이고, 카타르시스이고, 슬픔에 대한 성숙한 방어기제이며, 공감과 소통의 증표지만 무심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를 조롱하고 비하하며 불쾌함과 모멸감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가 내린 결론이 유머와 휴머니즘을 조합한, 책의 제목인 ‘유머니즘’이다. “유머를 위한 유머가 아니라 인간애로 연결되는 유머. 사람을 따스하게 품는 마음과 삶에 대한 연민이 묻어나는 웃음, 더 나아가 비인간적인 현실에 저항하고 새로운 존재를 생성하는 유머”다. 그러한 힘을 잉태한 유머는 휴머니즘의 지렛대가 되고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유머니즘의 가능성은 유머야말로 경계를 허물고, 상투적인 이분법을 넘어 모든 것을 감싸 안고 나가는 경계에 핀 꽃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환상이나 허무주의로 도피하지 않고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으면서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논리와 비논리, 의미와 무의미, 앎과 모름, 이성과 감성, 정상과 비정상, 똑똑함과 어리석음, 기쁨과 슬픔 등 상투적인 이분법을 넘어, 언어 이전 또는 그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있는 듯하다. 나와 너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서.” 바로 유머니즘이다. 250쪽, 1만3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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