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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ifty+ 게재 일자 : 2019년 02월 08일(金)
퇴직후에도 새 ‘아이템’ 끝없이 도전… “80代까지 계획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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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서울 한 카페의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쉽게 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피아노 치는 남자’송수근 前 문체부차관

아들이 피아노 적응 못하자
함께 배우자며 매주 학원에
이제는 아내 신청곡도‘척척’
교습 경험모아 책까지 펴내

공직 사퇴뒤엔 몸 추스르려
주민센터 찾아 탁구 배우고
3개월동안 하모니카 수강도

아내는‘女검사 1호’조희진
바쁜 아내대신 요리로 외조
지금은 미술·교육에도 관심

‘이 나이에 무슨’포기 안돼
뭘 할지 고민하고 시도해야


“퇴직하고 허전하지 않냐고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아서죠. 저 스스로는 멀티태스킹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저보고 좀 번잡한 느낌이 있는 스타일이라나요, 하하.”

송수근(58) 씨는 불과 1년 7개월여 전만 해도 정부 고위 관료였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6월까지 6개월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자 장관 직무대행을 지냈다.

2017년 1월 23일은 송 전 차관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특검에 구속·수감되면서 모든 책임을 지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부 차원에서 사과문을 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막후에 송 전 차관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혼돈의 시기였어요. 하루 앞을 내다볼 수가 없어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업무 계획을 짠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당시 문체부의 고민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뭔가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장관 직무대행을 맡고 난 후 대국민 사과를 준비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우선 사과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관이 구속된 상황이라 따로 상의할 사람도 없었어요. 매우 두려웠지만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29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떨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게 했기에 (문체부의) 최악은 넘기지 않았나 믿고 있습니다.”

송 전 차관은 공무원 생활의 꽃인 차관에 오르는 순간부터 마지막을 준비했다. 급하게 돌아가는 정치 상황 속에서 기울어진 배의 선장 자리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은퇴할 때 최고의 소망은 은퇴식에서 ‘그동안 큰 문제 없이 일을 끝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퇴장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게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하지만 그때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했다고 봅니다. 어렵고 부담스러웠지만 제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문체부 동료·후배들이 ‘송 전 차관이 그렇게 마무리를 해줘서 다행’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나중에 후배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워낙 경황이 없던 터라 송 전 차관은 사퇴 후 자신에 관한 일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특별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제 미래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어요. 그냥 너무 지쳐있었고 좀 쉬고 싶었습니다. 저를 걱정해주는 지인에게 강의 제안을 받기는 했는데 그건 그다음의 일이었죠.”

송 전 차관은 우선 경기 고양시 자택 인근 지역 주민센터가 운영하는 문화 강의 2과목을 신청해 수강했다. 하나는 어려서부터 종종 했던 탁구, 다른 하나는 하모니카 연주. 탁구는 사직 후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데 그만이었다. 게을러지는 걸 우려해 일부러 이른 시간대의 강의를 잡았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1∼2시간 땀을 흘리다 보면 시름이 달아났다.

하모니카는 평소 연주해보고 싶었다. 조그맣지만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악기라는 점에서 매료됐다. 한 3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주민센터를 드나들며 손에 익혔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게 지난해 9월부터다. 한 지인의 소개로 강원대를 거쳐 용인대에 출강하게 됐다. 강의 전담교수로서 문화 콘텐츠에 대한 강연을 맡았다.

“중앙부처 1급 공무원에서 대학교 막내 교수가 됐습니다. 그러나 전 운이 좋은 편이었죠. 공직생활 경험과 미리 받아둔 학위로 비교적 쉽게 두 번째 잡(Job)을 구하게 됐으니까요.”

학교생활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송 전 차관은 강의하는 일을 천직처럼 여기고 있다.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문화의 이해 등을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다.

송 전 차관은 공무원 재직 시절에 남다른 열정으로 후배 직원들을 자극하는 상사였다.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늘 새로운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중 첫 번째가 피아노를 배운 일이었다. 어려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지 않은 이상, 중년의 남자와 피아노를 연결짓기는 어려운 일. 그러나 그는 기어이 피아노를 배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어요.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 피아노 학원을 보냈는데 어느 날 학원을 다녀오더니 피아노를 안 치겠다는 거예요. 바이엘, 체르니 몇 번 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제 딴엔 영 적응이 안 됐던가 봐요. 그래서 제가 ‘그럼 학원에 같이 다니자’하고 약속을 하고 배웠어요. 일주일에 화·목요일 두 번, 업무상 약속은 월수금으로 하고 화목은 어김없이 아이와 함께 학원에 갔어요. 체르니까지 했는데 그러다 보니 피아노라는 악기에 매력을 느꼈고, 쉽게 배우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게 된 거죠.”


어느새 피아노의 매력에 빠진 송 전 차관은 결국 피아노를 배운 자신의 경험을 모아 2014년 ‘매력을 부르는 피아노’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 됐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또 한 번은 권투를 배운 적이 있다. 먹기만 하고 운동을 안 해 토실토실해진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의 대상이 되자 아예 아이와 함께 새벽 권투 연습을 다녔다.

“김대중 정부 때였어요. 청와대 행정관으로 있는데 아이와 운동할 방법이 없어서 복싱체육관에 함께 다녔어요. 출퇴근하면서 보니까 집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체육관이 있더라고요. 살을 빼는 데는 복싱의 줄넘기가 최고잖아요. 또 아이 혼자 보내면 어려울까 봐 내친김에 저도 함께했어요. 오전 5시에 기상해서 체육관까지 뛰어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짓궂은 아빠였던 셈이죠.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가 가을 운동회 달리기에서 1등을 하더라고요. 아이 스스로도 놀라는 눈치였어요.”

요리도 마찬가지다. 송 전 차관은 일하는 아내 대신 주방에 들어간 지가 오래됐다. 2007∼2010년 미국 뉴욕의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는 아이를 데리고 홀로 부임해 낮에는 업무를 하고 밤에는 아이 학교생활을 뒷바라지했다. 아이를 위한 요리 고민을 거듭하면서 거의 모든 음식을 조리할 수 있게 됐다.

“아내도 공무원 생활을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그로 인해 저는 음식을 만들고, 아이와 소통하는 좋은 아빠가 된 겁니다. 1997년 처음 6세 아들과 해외에 나갔는데 그때 공부 외에 가장 큰 일이 아이를 위해 밥해주고 놀아주는 일이었던 같아요. 그때부터 음식을 직접 하게 된 겁니다.”

송 전 차관의 부인은 ‘여성검사 1호’로 유명했던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이다. 조희진 전 지검장은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의 책임자였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의 단장을 맡아 안태근 전 검사장을 재판에 넘기고 지난해 6월 사직했다. 남편이 사직한 후 1년 만의 동반 사직. 지금은 법무법인 담박을 설립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부부로 살다가 나란히 사퇴한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그동안엔 부부라도 서로의 분야를 잘 몰라 관여할 수도 없었지만 이젠 동병상련이랄까. 잇달아 은퇴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조언하고 많은 의지가 됐죠. 아내가 퇴직한 후 스페인으로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아들과 함께 일본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고요. 정말 오랜만의 가족 휴식이었습니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송 전 차관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음악, 요리 외에도 미술과 교육에 관심이 많다.

“피아노를 배운다고 하면, ‘이 나이에 무슨∼’ 하면서 미리 포기부터 하죠. 그러나 은퇴 후에도 피아노를 배우는 일이 가능합니다. 피아노뿐만이 아닙니다.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아요. 어르신 중에는 성경을 필사한다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는 분들도 주변에 많고요. 내가 뭘 할지 고민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제가 행정학을 할 줄 몰랐고요. 공무원을 한 제가 또 피아노를 치고 요리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송 전 차관은 다행히도 80대의 목표는 이미 세워뒀다고 했다.

“얼마 전 동문회에 나갔어요. 많은 친구가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 중이었죠. 한결같이 하는 말이 ‘퇴직금 빠져나가는 속도가 무섭다’고 하더군요. 저도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웠겠나 하고 자문해요. 자신이 없죠.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이제 사회에서 더는 내가 할 일이 없다, 나를 찾는 곳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 대신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전 아내에게 그랬어요. 80세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손자·손녀 키우는 일이라고요. 유학하면서 제 아이를 키웠듯이 아이들 키우는 게 자신 있습니다, 하하.”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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