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대구 부모교육연구소에서 김상도(58) 대표가 국내 기업 ‘블루홀’이 개발한 게임 ‘배틀그라운드’에 접속하면서 웃어 보이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김상도 대구 부모교육연구소 대표
아이들과 공감하려 직접 게임
3300시간 하니 상위0.0049%
‘선비충’불리다 친구신청 쇄도
“게임 많이 하는 아이 둔 부모들
‘못하게’보다‘해야할일’에 초점
약속 지켰다면‘자유시간’줘야”
“게임을 이기는 것도 결국 전략
당장 성적 올리기에 집착 말고
스스로 공부하는 법 유도해야”
상위 0.0049%. 온라인 일인칭 슈팅게임(FPS 게임) ‘배틀그라운드(배그)’에서 김상도(58) 대구 부모교육연구소 대표의 20일 현재 순위(412위)를 %로 환산한 숫자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의 김 대표가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것. 그가 지금까지 배그에 투자한 시간만 3300시간이 넘는다. 지난 15일 대구 달서구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난 김 대표는 “게임을 직접 해보니 아이들이 재미있게 할 수밖에 없겠더라”면서 “게임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과 고민을 더욱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배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부끄러워서’였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학습법을, 부모들에게는 교육법을 강의하는 일을 2004년부터 해오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강의 현장에서 게임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강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게임과 관련된 퀴즈를 만들어 상품을 걸고 풀게 한 적도 있다.
김 대표는 “그렇게 게임에 대해 열심히 떠들고 다니다 보니 문득 해보지도 않고 너무 아는 척만 하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며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 게임을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심을 한 지난해 1월 마침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배그가 김 대표 눈에 들어왔다. 그는 “국내 기업 ‘블루홀’이 만든 게임인 배그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 신기했고, 당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고 배그를 선택한 이유를 떠올렸다. 배그는 100여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가상의 섬에 착륙해 바닥에 떨어진 총기, 방탄조끼 등을 주워 서로 죽이면서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다. 게임 특성상 화면에 등장한 적을 빠르게 찾아 정확히 총을 겨눠 쏴야 한다. 게임 내 캐릭터를 달리게 하거나 바닥에 떨어진 게임 아이템을 줍는 등 행동을 취하기 위해 외우고 익숙해져야 할 단축키만 20개가 넘는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너무 어렵고 이 나이에 괜히 도전했구나 싶었지만, 캐릭터가 자꾸 적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서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배그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고, 단축키를 외우며 점점 게임에 빠져들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상도 대구 부모교육연구소 대표가 아이들에게 그림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아이처럼 게임을 즐기면서 만나게 된 ‘진짜’ 아이들은 김 대표에게 솔직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이따금 팀을 짜서 게임을 진행할 때 아이들은 김 대표에게 헤드셋을 통해 자신들의 언어로 말을 건네왔다. 그는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훈계를 했었는데 누가 나를 보고 ‘선비충’이라고 하더라. 나중에 알아보니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바른말만 하는 잔소리꾼을 그렇게 부르더라”며 웃었다. 그렇게 소통을 하고 다가가자 아이들이 먼저 김 대표를 친구로 추가했다. 게임에 접속하면 함께 하자고 신청해오기도 했다. 그는 “경기 가평군에 사는 청소년들과 호흡이 잘 맞아 팀을 짜서 게임하며 대화도 많이 했는데 얼마 전에는 그중 한 명이 ‘선생님과 다시 만나기를 기도했어요’라고 말해줘서 뿌듯했다”고 밝혔다. 이 아이들에게 김 대표는 ‘대구쌤’으로 통한다.
부모들의 질문이 쇄도했던 자녀의 게임중독 문제에 대한 그의 해법은 또렷해졌다. 김 대표는 “자녀의 과도한 게임 이용을 고민하는 부모들은 아이가 무엇을 못하게 할지보다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일단 학교 숙제 등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자녀와 함께 정하고, 이를 마치면 그 외 시간은 어떻게 보내든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또 “게임 외에도 아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의 눈높이에서 깊이 고민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게임 문제에 대해 이처럼 유연한 접근을 강조하는 김 대표이지만, 과거 아들을 한창 키울 때에는 그 역시 엄격한 부모였다. 2004년 중학생이던 아들이 새벽에 몰래 게임을 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모질게 훈육하고, 게임회사에 전화해 아들 명의의 게임회원 계정을 다 없애달라고 요청했다. 김 대표는 “아이가 왜 게임에 빠져드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무작정 못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며 “어른이나 아이나 행복은 좋은 조건보다는 좋은 관계에서 느끼는 것인데 그런 식의 접근은 소통을 막고 관계를 단절시킨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대구 부모교육연구소는 아이들 교육에 있어 관계와 소통을 중시하며 자기주도학습을 유도하는 공부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청 단골손님이 됐을 정도로 대구에서 유명해진 그의 강의를 듣고 뜻을 같이하게 된 학부모들과 김 대표가 사비를 들여 2015년 연구소를 차렸다. 교육청 초청 외에는 모두 무료로 진행되는 김 대표의 강의처럼 연구소 역시 무료로 운영되며 도움을 요청해오는 부모와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우리 연구소가 주목하는 문제는 사교육 의존형 자녀교육으로, 사랑과 신뢰의 관계 안에서 행복해야 할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마음의 벽이 생기고 소통이 어려워지는 현상”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가정에서도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연구소를 찾아온 부모와 아이들이 소통과 관계의 회복을 통해 좋은 변화를 얻어 가는 사례가 많다. 그는 손을 심하게 떠는 초등학교 3학년생이 연구소를 찾아왔던 때를 기억했다. “아이가 어릴 때 수학 문제를 풀다 손가락을 사용했는데 어머니가 손을 못 쓰게 하려고 자로 손가락을 때린 이후 손을 떨었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대표는 아이에게 수학 계산을 할 때 필요하면 손가락을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이야기했다. 가정에서도 소통을 중심으로 교육 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했다. 어느 순간부터 손을 떨지 않게 된 아이는 20점, 30점 맞던 수학 과목에서 90점, 100점을 맞기 시작했다. 심리적 안정을 되찾자 아이의 태도도 당당해졌다. 그는 “아이가 신체나 주변 사물을 동원하는 것은 뭔가를 배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불안한 부모들이 이를 생략하고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하려고 하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며 “무엇보다 부모가 ‘나는 어떤 경우에도 너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꾸준히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피지컬(주로 순발력을 뜻하는 게임 용어)’보다는 전략”이라며 배그를 통해 배운 하나의 교훈을 알려줬다. 본래 가진 능력치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배그에서 생존자가 20명 이하가 되면 그때부터는 실력보다는 전략이 좋은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자녀 교육을 할 때에도 아이가 당장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학년 때부터 성적 올리기에 매몰되기보다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공부에 재미를 느끼도록 유도해 장기적으로 공부할 동기를 충분히 쌓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아이들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느냐에 관계없이 어릴 때부터 자기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힘을 길러둔 아이들이 더 오래, 더 행복하게 살아남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김 대표는 자신의 배그 아이디인 ‘Daegu_PE_LAB’을 꼭 좀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구 부모교육연구소라는 의미로 지은 이 아이디를 보고 더 많은 청소년이 자신에게 친구신청을 하고 함께 소통했으면 해서다. 그는 배그에서 최종 1인이 될 때마다 찍어둔 화면을 인쇄·코팅해 뒀다며 훈장처럼 내보였다. 또 배그에서 등장하는 가방을 실제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어렵게 구했다며 보여주기도 했다. 한참 배그의 재미에 대해 설파하던 김 대표는 ‘배그 가방’을 멘 채로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무슨 죄입니까. 어른들이 게임을 너무 재미있게 만든 탓이죠.”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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