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지하 인프라 키울 法制 정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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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하 공간을 이용한 신개념의 친환경 교통수단이 경쟁적으로 건설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M30 고속도로 외에도, 프랑스 파리의 A86 고속도로, 미국 보스턴의 빅디그 프로젝트 및 일본 도쿄(東京)의 대심도 지하 순환도로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지하 50m 이하 공간을 지나가는 서울∼제물포 지하터널, 서울∼광명 고속도로, 서부간선도로 지하 터널 등이 건설 중이고, 지난해 12월에는 GTX-A 노선도 착공되면서 지하 대심도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성공 사례들이 쉽게 이뤄진 건 아니다. 사업 초기에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쳐 많은 난관에 봉착하며 추진에 애로를 겪기도 했다. 대표적인 요인들로 건설 단계와 운영 단계에서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술적 측면과 지하 공간의 소유권에 관한 제도적 측면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먼저, 기술적인 측면에서 제기되는 주요 문제점은, 안전한 지하 대심도 건설 기술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지, 공사 중에 땅 꺼짐 현상은 없을지, 소음과 진동 등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지, 지하 화재나 침수, 지진 등에 대비한 재난 방지 대책은 충분한지로 모인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꼼꼼히 따져보고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우리의 지하 건설 기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 서울 도심에만 총 350㎞에 이르는 지하 교통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지하 지반 침하를 예측하는 지반탐사 기술과 침하를 예방하는 차수·보강 기술, 대심도 터널 굴착과 수직구 굴착 기술 등이 이미 국내외 많은 현장에서 안전하게 잘 적용되고 있다. 진동·소음·먼지 비산(飛散) 등 지하 굴착 공사 중에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도 큰 발전을 이뤘다. 또, 최근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터널 굴착 기계(TBM)를 이용하면 진동을 50%까지 줄일 수 있다. 이 기술은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해저 터널 공사에 성공적으로 활용됐다.

한편, 지하 공간의 이용이 많이 늘어남에 따라 제도적 측면의 지원도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2017년 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지하 개발에 대한 보상 관련 법령은 달라진 환경에 맞도록 대대적으로 정비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민법에서는 지하철과 같은 시설을 건설하는 경우, 깊이와 관계없이 지하 공간에 대한 구분 지상권을 설정하고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 조례에서는 지하 사용에 따른 보상 범위를 최대 지하 40m까지로 규정하고 그 이하는 극히 일부만 보상해 주고 있다. 이에 대한 판례도 매우 다양하다. 그 부작용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지하 공간을 이용하는 공공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일본의 경우, 이와 같은 불합리한 제도에 따른 갈등을 줄이고자 지난 2000년 ‘대심도 지하의 공공적 사용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지하 40m 이하는 공용 공간으로서 토지 소유권자의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고, 구분 지상권도 설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유재산과 공공의 이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미국의 한 혁신기업은 초고속 지하터널을 구상해 실현해 가고 있다. 자율 주행차는 더 깊은 대심도에서 거미줄 같이 뻗은 지하도로를 달릴 것이다. 머잖은 미래 우리 도시의 모습이다.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완벽을 기하고, 구분 지상권과 같은 보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할 수 있는 법제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