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타일>부르카 벗어던지고… 사우디 여성, 이젠 창업도 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한 레스토랑에서 오너 겸 요리사인 라마 나시프가 영업 시작 전 위생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 경제참여 빗장 푼 ‘오일왕국’

작년부터 여성 운전 허용된후
푸드트럭 운영하고 식당 차려
20代 사장 “손님들 우리 지지”

‘카슈끄지 살해’비판 모면 위해
빈 살만 ‘여성인권’ 내세웠지만
여권운동가 체포·고문도 ‘여전’

“사람들은 식당 주방으로 걸어가는 우리를 외계인처럼 바라봅니다.”

여성들의 경제 참여를 엄격히 제한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최근 식당을 차린 라마 나시프는 지난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창업에 대한 사우디인들의 반응을 이같이 표현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우디에서 여성들의 식당 창업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난해 6월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운전을 허용한 이후 점차 경제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고 있다.

FT는 2일 ‘사우디 여성들이 식당업에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특집 기사를 통해 나시프처럼 식당을 창업하거나 푸드트럭 영업을 하는 여성들을 집중 조명하며 “수도 리야드와 제다의 일부 여성 기업가들은 미국 도시 거리에서 볼 법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26세의 바샤에르 바후모즈(26)는 친구들과 함께 트럭을 몰고 평소 집에서 만들던 누텔라와 피스타치오를 토핑한 미니 팬케이크를 팔고 있다. 그는 “손님 대부분이 우리의 활동을 지지한다”며 “지난 3월 서방 여성 가수로는 처음으로 머라이어 캐리가 사우디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때는 하루 만에 한 달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 푸드트럭의 위치를 확인해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유행이 됐다.

사우디 여성들의 경제 참여를 확장시킨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이다. 서방세계로부터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완화하기 위해 ‘여성 인권 향상’을 내세웠다. 운전이 허용된 후 경제 참여에 눈치를 보던 여성들은 당국의 비호 속에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사우디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의 음식을 만드는 문화로 인해 식당업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또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익숙한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SNS 등을 통해 해외의 다양한 요리법을 연구해 식당업이 인기가 높다.

사우디 여성들의 경제 참여는 최근 급속도로 바뀌는 경제 체제의 영향이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왕정에서 높은 임금의 공공일자리를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셰일가스 혁명이 터지고 고유가 시대가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며 과거와 같은 시혜 정책은 줄어들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이들 중에는 취업 대신 창업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고 여성 또한 가계의 일부를 책임지게 됐다. FT는 사우디 교육부 통계를 인용해 “매년 약 20만 명의 여성이 대학을 졸업하지만, 여성 취업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며 일을 원하는 여성들 중 3분의 1이 실업 상태”라고 전했다. 특히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을 통해 현재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체질을 에너지·신도시 개발·관광 등으로 다원화시킬 계획인데, 여성들의 경제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우디 당국은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87%에 달하는 식당과 카페 종업원 일자리도 장기적으로 자국민에게 돌릴 방침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기 위해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도 넘어야 할 숙제다. 일부 남성들은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여성들의 영상을 찍어 악의적인 표현과 함께 SNS상에 올리기도 한다. 바후모즈는 “연세가 든 남성들은 ‘소녀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이 슬프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엄연한 내 사업장”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왕정이 계속해서 여성들의 창업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빈 살만 왕세자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해 여성들의 경제 참여를 장려하고 있지만, 한편에선 여성 인권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등 탄압책을 펴고 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