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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ifty+ 게재 일자 : 2019년 04월 12일(金)
‘손주사랑’으로 시작한 SNS… “오늘도 쓰고 그려 올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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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재·안경자 부부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인스타그램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에 올렸던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인스타그램 35만 팔로어 거느린 이찬재·안경자 부부

캠퍼스커플로 만난 동갑내기
교사 생활하다 1981년 이민
2017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페북’재직 아들 권유로 SNS
처음엔 손주들에 안부 알리려
매일 글·그림 한편씩 올리다
이젠 다양한 소재 찾아나서
英 BBC·가디언 소개되기도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보다
좋아하는 것 즐기는게 최고


“오늘도 우리는 무엇을 그릴까 생각합니다.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나누고 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씁니다. 화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우리가 어제처럼 오늘도, 또 오늘처럼 내일도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1942년생 동갑으로 서울대 사범대 커플인 이찬재·안경자 부부는 이미 유명인이다. 그것도 ‘글로벌 셀럽’이다. 2015년에 시작한 인스타그램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손자들을 위한 그림)’의 팔로어 수가 무려 35만여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36년간 살았던 브라질의 주요 방송, 신문은 물론 영국의 BBC, 가디언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인스타그램에서 갑자기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인들이 대거 들어와 이유를 찾아보니 바로 이 ‘손자들을 위한 그림’ 때문이었다는 멋진 후일담도 갖고 있다.


몇 번의 극적인 계기가 있긴 했지만 모든 결과는 일상의 순간순간, 그 순간의 감정을 포착해 내는 할아버지의 그림, 그리고 할머니의 따뜻하고 유려한 글이 전하는 따뜻함 때문이다. 댓글들 대부분이 고맙고, 눈물난다, 그래서 또 기다려진다는 내용이다.

처음에 적적한 아버지를 생각한 아들의 권유로, 또 아들의 강권에 못 이겨 손자들에게 할아버지의 하루하루를 전하기 위해 시작한 인스타그램이 이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오랜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2017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 부부가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수오서재)라는 책을 냈다. 이들을 최근 만났다.


# 시작

스물여섯에 결혼해 남편은 지학교사, 부인은 국어교사로 일하던 이들은 1981년 1남 1녀를 데리고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상파울루에서 남편은 의류사업을 하고, 부인은 한국학교 교장을 거쳐, 귀국 전까지 영국계 국제학교에서 한국문학 교사로 일했다. 계기는 2015년 5분 거리에 살던 딸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였다. 두 손자의 등하교가 삶의 최대 일과이자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이 씨에게 엄청난 빈자리였다. 멀리 미국 뉴욕에 사는 아들은 멍하니 앉아서 TV를 볼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닳았다.

“아들이 오래전 내가 엽서에 그림을 그려 보내줬던 것을 기억하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어요. 처음엔 귀찮기도 해서 ‘무슨 그림이냐’고 했는데 공원에서 본 쓰레기통도 좋고, 구겨진 초콜릿 포장지도 좋고, 시든 꽃도 좋으니 아버지가 본 것을 무엇이든 그리라고 했어요.” 이렇게 시작됐다.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아들은 그림을 그냥 그리지 말고, 멀리 있는 손자들이 할아버지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에 매일 하나씩 올리라고 했다. “남편은 인터넷도 안 하고, 휴대전화도 문자나 하고 카톡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올리게 됐어요. 처음엔 간단하게 제목 정도 한두 줄 쓰다 점점 길어지게 됐어요”라고 안 씨는 설명했다. 안 씨가 그림을 그린 남편의 감정을 이입해 짧게 한두 줄 쓰던 것이 점점 글에 대한 반응이 좋아지면서 ‘남편 그림, 부인 글’이라는 아름다운 포맷이 정착됐다.


# 가족의 힘

“처음에는 하루에 하나씩 올렸어요. 그러면 가족들이 ‘좋아요’를 눌러줬어요. 계속 올리니 어떤 날은 ‘좋아요’가 20개, 30개 되는 날도 있었죠. 댓글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죠. 그러다 아들이 페이스북에 왜 우리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인스타그램을 하게 됐는가를 전한 짧은 동영상을 올린 것이 말 그대로 엄청난 반응을 얻으면서 순식간에 하루에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리게 됐어요. SNS가 이런 거구나 알게 됐죠.”(안 씨) 동영상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아이들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게 하고 싶어 아버지께 손자들을 위해 그림 그리기를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인스타그램은 이들 부부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작업이다. 상파울루에 살 땐 부부가 아침에 어떤 것을 그릴지 의논해 이 씨가 그림을 그리면, 안 씨는 글을 써서 이를 메신저에 올린다. 그러면 그때부터 뉴욕에 사는 아들, 한국에 사는 딸과의 회의가 시작된다. 이들 사이에서 이것이 좋겠다, 저것은 안 된다는 의견이 오간다. 이 가족회의에서 통과되면, 아들은 글을 영어로 번역하고,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한글, 영어, 포르투갈어 3개 국어로 올린다. 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자신이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아버지의 옛이야기를 그리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아들이다. “나이 든 세대는 인터넷 같은 새로운 것을 잘 모르잖아요. 대부분 아이들이 한번은 가르쳐 주죠. 그렇게 한번 알려주고 끝나면 계속할 수 없어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함께 해줘야 가능한 일이에요”라는 이들 부부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 변화와 보람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는 감정보다는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니’ 하는 놀라운 감정입니다.” 인스타그램이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부부의 공통된 소감이다. 긍정적이고, 응원과 위로를 주고받는 댓글 덕분에 큰 힘을 얻는다는 이들은 지난 4년여를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떠올렸다. 브라질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전통의 인기 프로그램 ‘판타스티코’에 한국 이민 사상 한국인으로 가장 길게, 긍정적으로 예쁘게 나온 일, 시한부 할머니가 죽기 전에 자기 딸에게 이 씨가 그린 그림을 주고 싶다고 해서 직접 그려 보내준 일, 아시안게임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그렸다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엄청난 감사의 인사를 받은 일, 그리고 얼마 전 코리안 파운데이션의 요청으로 공공 외교에 대해 강연한 일…. ‘우리가 한국을 많이 알리고 소개한 것이 공공 외교였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10대 중학생 손자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스타그램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0대 청소년들이 그렇듯, 많은 일에 바쁘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손자들이 볼 추억의 시간을 쌓는다고 했다.

이들에게 나이 들어 새로운 일을 통해 얻은 기쁨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조언도 부탁했다. “그저 초심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특별한 일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우리가 보내는 일상처럼, 해야 하는 일처럼 합니다. 나이 들면서 특별히 무엇인가를 꼭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처럼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또 어떤가요.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즐거움은 있지 않습니까.”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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