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좌우로 강경화 외교장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2017년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때 모습. 자료사진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대북정책 간극 확인 한·미 정상
‘北 외골수’ 외교안보 전면 개편
동맹 강화 속 日·中과 협력해야
북한이 하노이 노딜의 충격에서 벗어나 발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대미 협상 라인을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바꾸고, 중국, 베트남 등의 우방국과 정상 간 친서를 교환하는가 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 중이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은 자제하는 등 미·북 간 협상의 판 자체는 깨지 않고 있다. 성급하게 다시 대미 협상에 나서기보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면서 기초체력을 보강해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 북한 못지않게 하노이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 성급하게 추진된 한·미 정상회담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동맹 간 대북정책의 간극만 확인한 결과를 낳았다. 귀국 후엔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겠다며 제안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북한만 바라본 문 정부의 외골수 외교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형국이다. 이러다 조급증으로 자칫 일을 더 그르칠까 걱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호흡을 길게 갖고 한발 물러서서 외교·안보전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키우고 다져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재임 2년이 돼가는 국가안보실장과 외교장관을 교체해 외교·안보팀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다. 북한 외골수 외교가 자처한 현 상황에 대한 1차 책임은 안보실장에게 있으며, 보다 균형 있는 외교를 펼치지 못한 데는 외교장관의 책임도 크다. 더구나 볼턴-정의용, 그리고 폼페이오-강경화의 케미스트리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워싱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한국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또 반드시 미국의 입맛에 맞춰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시 급박하게 전개될 외교·안보전에 대비해 대표선수를 새로 세워 진용을 재정비하는 것도 중요한 전술 중 하나다.
더 나아가 대미, 대일 외교 등 우방국과의 관계 개선과 협력 강화도 시급하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31일 자 문화일보 칼럼에서 “북한에 올인하는 외골수 외교가 아니라 균형 잡힌 외교를 해야 하며… 북한이 상수이고, 다른 외교·안보 사안이 종속변수가 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더 이상 이를 미뤄선 안 된다. 워싱턴 조야에선 문 정부의 대북정책에 불편한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운전자, 중재자, 촉진자론’을 펴며 과도한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 대북 경협의 과속질주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방미의 경우 미 행정부는 시큰둥했고 언론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미 간 신뢰회복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한·미 공조를 강화해 안보의 펀더멘털을 회복해야 한다. 동맹보다 더 좋은 강화제는 없다.
1965년 관계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한·일 관계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불행한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잊어선 안 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분명 지속돼야 한다. 하지만 과거사로 인해 한·일 관계가 올스톱되는 상황 역시 막아야 한다. 그간 수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7∼8년(이명박 정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상 긴 세월 동안 경색된 적은 없었다. 한·일 간 막후채널은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고 소셜미디어 등에는 서로를 비난하는 목소리와 정보가 넘쳐난다. 일본 내 반한감정도 커지고 있다. 과거는 직시하되 미래로 가자고 외쳤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이 그립다.
한·일은 안보전략 면에서 그 어느 나라들보다도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 미국의 중요 동맹국이면서 이웃 중국의 부상에 대처해야 하며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처해 있다. 양국 정상과 외교·안보팀은 이런 전략적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논할 수 있어야 하며 대북정책을 포함해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협력할 길을 찾아야 한다. 요즘 일본에선 총리실을 비롯해 전문가 그룹에서도 이미 문 정부와 대화나 협상을 하긴 틀렸고 그냥 차기 정부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 만난 주일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의 말도 잊히지 않는다. 사석에서 “본국에선 적절한 지침도 주지 않고 그냥 기다리라는 식의 훈령만 내려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문 정부 5년 내내 한·일 관계는 이러다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가 쉽게 2017년의 위기 상황으로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미·북 3차 정상회담을 비롯해 또다시 외교·안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지금 안보 펀더멘털을 강화해야 한다. 선수와 전략을 재정비해 다가오는 외교·안보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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