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책읽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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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한 의사였고, 뛰어난 뇌신경학자였으며 더할 나위 없이 유려한 문장의 작가였던 올리버 색스(1933~2015).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알마)가 나왔습니다. 그가 뉴욕타임스 등에 기고한 글과 자신의 노트에 내밀하게 쓴 글 등 33편이 묶여 있습니다. 수영, 박물관 등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오랜 기억부터 의사이자 과학자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 자신이 연구한 질병들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일상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광활한 우주와 위대한 자연에 대한 애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글은 모두 제각각의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습니다. ‘색스가 사랑했던 것들’. 희소암을 앓으며 자신에게 허락된 날이 얼마 남지 않다는 것을 안 그가 자신이 떠난 세상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색스가 사랑했던 것 중에서 뛰어난 작가인 동시에 책을 좋아하는 애독자였던 그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찾아봤습니다.

서너 살 무렵 읽는 법을 익혔던 어린 색스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서재였습니다. 네 벽이 모두 책장인 곳, 서재는 초기 기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곳으로 그곳에서 키플링의 ‘정글북’을 읽고 모글리에게 완전히 빠져 자기만의 판타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서재는 그가 성인이 된 뒤에도 인기 순위에서 실험실과 1, 2위를 다투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언제나 독서삼매경에 빠져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잃곤 했습니다. 성장기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 역시 도서관이었습니다. 신경학적 사례 연구에 몰두하게 된 것도 열세 살 즈음 읽은 프리제시 카린시의 ‘나의 두개골 일주 여행기’ 때문이었습니다.

뇌신경학자답게 독서를 뇌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독서란 매우 복잡한 과제로 수많은 뇌 영역을 호출한다고 합니다. 다만 독서는 인류의 역사에서 최근에 개발된 능력으로 대략 5000년 전쯤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독서는 뇌의 시각피질 중 ‘시각 단어형태영역(VWFA)’이라고 부르는 미세한 부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VWFA에서 우리가 글을 읽으면 화면이 좍 펼쳐진다거나, 읽어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는 과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손상되면 놀랍게도 책을 읽고 이해하고 감동하는 일이 불가능해집니다.

책의 마지막, 33번째 글의 제목은 ‘삶은 계속된다’입니다. 그는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빠르게 사라지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탁월한 낙관론자답게 우리는 좀 더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며, 그래서 삶은 계속돼야 한다고 써내려갑니다. 그의 이 결론의 바통을 책에 넘겨봅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삶이 계속되고,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책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372쪽, 1만9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