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에 기록되지 않은 매우 중요한 것이 있다.” 얼마 전 식사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33년간 반도체 사업 등에서 경험한 것을 기록한 그 책을 열심히 읽던 중이라 ‘기록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얘기를 전해준 분에 따르면 권 회장은 집무실에 찾아온 사원들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권 회장은 우선 들어온 사람을 쳐다보면서 ‘왜?’라고 물어 용건을 간단히 말하게 한 다음, ‘뭔데?’라고 해 당면한 문제점 내지 직원이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그래서?’라고 질문해 찾아온 직원이 생각하는 대안이나 해법을 말하게 하는 것이 권 회장의 대화법이었다. 그런데 다른 CEO들과 구별되는 권 회장만의 특징적인 질문은 마지막의 ‘그럼 내가?’였다고 한다.
그 일을 잘하기 위해 내가 도와줄 게 무어냐고 진지하게 묻는 상사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CEO는 질문하기보다는 지시하기에 바쁘다. 질문을 하더라도 ‘왜?’와 ‘뭔데?’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찾아온 직원의 생각을 경청하고, 무얼 도와주면 좋겠는지를 묻고 밀어주는 상사와 일하는 게 얼마나 신나는 것인지, 혹시 세종이 그런 상사 아니었느냐는 게 얘기를 전해준 분의 말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세종의 실천지향형 대화의 또 다른 예로 성 쌓기 사업을 들 수 있다. 1421년 8월에 최윤덕은 허물어진 한양의 성곽 상황을 보고하면서 “내년 봄부터 성 쌓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세종은 이때도 역시 “경의 말이 옳도다(是)”라고 호응했다. 왕의 호응과 적극적인 지원은 최윤덕으로 하여금 ‘축성대감(築城大監)’이라는 별명을 얻게 할 정도로 성 쌓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게 했다. 1429년과 1430년에 각각 그는 경상·전라·충청도를 비롯해 전국 고을에 성 쌓는 일의 실행조건을 작성해서 올렸다.
세종은 그를 불러서 성 쌓는 일에 대해 자세히 들은 다음 “성 쌓는 일은 경에게 모두 위임한다(全付于卿)”면서 마음과 힘을 다해 성사시켜 줄 것을 당부했다. 왕의 이러한 신임에 힘입어 최윤덕은 1438년에 성곽축조에 관한 표준 규식인 ‘축성신도(築城新圖)’를 제작했고, 그때 쌓은 한양 도성 및 전국 고을의 읍성들은 나중에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는 보루(堡壘)가 됐다.
집현전 창설 아이디어나 성 쌓는 공사는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세종에게 상당한 모험이었다. 따라서 그 제안들을 허투루 듣거나,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해 일 만드는 것을 회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질문으로 말문을 열고, 수긍화법으로 인재의 속말을 끌어낸 다음, 좋은 제안에는 맞장구를 치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럼 내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라고 묻는, 그래서 인재들을 신명 나게 하는 직장 상사가 우리나라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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