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9.7.24 수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15일(水)
“고택 음악회 14년… 부모에게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윤상구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집행위원장이 15일 서울 북촌 ‘윤보선 고택’에서 부친인 윤보선 전 대통령 흉상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윤상구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집행위원장

강동석 교수가 예술감독 맡아
매년 주한대사 부부 20명 참석
음악축제는 민간외교의 한마당

서울을 세계적 실내악도시로
잘츠부르크처럼 성공 꿈꿔
새 도전에 동참하게 돼 영광

서울시 지원 갈수록 줄지만
외국 연주자 수준 낮출수없어
후원자 많이 영입해야하는데…


‘윤보선 고택’에서 펼쳐진 음악회 감흥 때문이었다. 윤상구(69)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대표 겸 집행위원장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은. 그는 음악회에 참석한 각국 외교관들을 위해 영어로 인사말을 했다. 유창하면서도 겸허가 밴 어투가 인상적이었다.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의 장남인 그는 사적(史蹟)으로 지정돼 있는 서울 북촌의 윤보선 고택 주인이다. 부친이 했던 정치를 피해 사업가로 살아왔던 그는 왜 고택에서 음악회를 하게 됐을까. 실내악축제 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됐을까. 그가 언론과의 접촉을 즐겨 하지 않는다고 들었기에 여러 경로로 미리 말을 넣었다. 그 후에 연락을 취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뜻밖에 흔쾌히 만나자고 했다. 그가 승낙한 연유를 인터뷰 중간에 알 수 있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재동 그의 회사 사무실에서 이뤄졌고, 이후 해외 출장을 간 그가 14일 귀국한 다음에 보완됐다.

―고택에서 음악회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내(양은선 씨)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첫해부터 관여했기 때문이에요. 이 축제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연세대 음대 강동석 교수가 2003년에 만든 ‘뮤직 알프 페스티벌’로 시작했어요. 강 교수는 유학 시절에 봤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을 모델로 2005년에 실내악축제를 만들었어요. 연세대 음대 동료들과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지인들이 함께했지요. 그때 제 아내도 살롱콘서트 형식의 모임에 참여했어요.”

1980년에 그와 결혼한 양은선 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단다. 연세대 재학시절에 학교 방송국에서 진행자로 클래식음악을 방송한 적도 있었다. 양 씨는 실내악축제에 참여하며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을 ‘프렌즈’로 초청하는 살롱콘서트를 특별히 좋아했다.

“그 콘서트를 저희 집에서 하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게 된 것이죠.” 그는 매년 봄에 여는 고택 음악회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다. 축제 주최 측인 기획사 마스트미디어에 확인해보니 2006년부터였다.

―부인처럼 음악을 좋아합니까.

“클래식은 문외한이에요. 청소년기에 팝송을 즐겼으나 클래식은 배운 적도 없어요. 유치원은 삼흥음악학원이란 곳을 다니긴 했어요. 어머니(신학자 공덕귀·1911~1997)가 음악을 가르치고 싶어 보내신 모양인데 그네를 탄 기억밖에 없어요. 미국서 유학하던 고교 시절에 합창단에 들어갔어요. 합창단이 여고서 공연을 하니까 거기 끼고 싶어서 오디션을 봤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세 번째 오디션 때 선생님이 정말 하고 싶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합격시키면서 저에게 립싱크만 하라더군요. 그런 실력이에요, 하하.”

그는 정돈된 말투로 나직나직 이야기했으나 자신의 음악 실력을 드러내면서 즐겁게 웃었다. 그는 서울을 세계적인 실내악도시로 만들려는 도전에 동참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음악축제에 적극 참여하게 된 개인적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었다. 그 첫 번째가 “집사람이 좋아하니까”였다.

“음악회를 집에서 하면 집사람이 행복해하거든요. 문화재인 집을 관리하기 위해 집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의 아내 양 씨는 시아버지가 전 대통령이고 시어머니가 유명한 신학자인 집에 시집온 후 미국 생활 2년을 빼면 줄곧 고택에서 살았다. 시아버지가 1990년 타계할 때까지 극진히 모시며 사랑을 받았고, 말년에 치매에 시달렸던 시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아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윤 위원장은 음악 축제 참여의 두 번째 이유로 “함께하는 분들의 품성이 좋아서”라고 했다.

“강동석 교수와 함께하는 분들의 인격이 높으니까 그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이 참 좋아요. 강 교수는 축제 예술감독을 하고 있는데,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축제 프로그램과 연주자, 곡목 선정을 혼자 다 합니다. 올해 주제인 ‘음악과 미식’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에 맞는 곡을 강 교수가 직접 골랐는데 한국에서 들어볼 수 없었던 곡도 꽤 있습니다.”

―강 교수는 어린 시절에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했지요. 만난 적이 있는데, 조용하게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네, 그러하시지요. 연주할 때는 열정적이지만 보통 때는 내성적이에요. 그렇게 조용한 분이지만, 세계적으로 음악 친구가 많아요. 그 덕분에 우리 축제에 해외의 귀한 연주자들을 초청할 수가 있습니다. 유명 연주자들은 스케줄이 다 차 있을 텐데도 강 교수 덕분에 기꺼이 옵니다. 적정한 경비를 주고 그들을 부르려면 엄청난 액수가 들어갈 겁니다.”

―음악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을 때는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듯싶은데요.

“글쎄, 이름만 걸어놓으면 된다고 해서 맡았는데 막상 하니까 걱정이 많습니다. 행사를 함께해 왔던 서울시 지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거든요. 시 산하의 서울문화재단과 공동 주최하다가 2012년부터 재단은 후원자가 되고 페스티벌위원회 자체가 주최자로 나서게 됐어요. 그래도 시 지원을 받으니 시민들께서 많이 즐기시라고 티켓 값을 대단히 싸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 연주자들을 모시는 경비는 더 줄일 수 없고, 수준을 낮출 수도 없으니 손해가 커져서 걱정이에요. 앞으로 제가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후원자를 더 많이 모셔야 하겠고요.”

언론에 잘 나타나지 않았던 그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축제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올해 14회째인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성황 속에 펼쳐졌다. 그중 압권은 역시 4월 28일 오후에 있었던 윤보선 고택 살롱콘서트. 서울에서 온전한 형태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반가옥에 울려 퍼지는 서양음악의 선율은 독특한 울림을 줬다. 이날 기자로서 초청을 받아 음악회를 지켜본 후 귀가하며, ‘프렌즈’로 객석에 앉아 있었던 오준 전 유엔대사에게 이런 감상을 문자로 보냈다.



‘오래된 집의 뜰에서

하프와 플루트가 어울려

1930년대의 탱고를 더듬는 가운데

새들이 연둣빛 나무 위에서

사월을 지저귀며

선율 속에 섞이고

담장 앞 수사해당이 응답인양

붉은 꽃잎을 몇 개 떨어트렸다



실내악을 야외 정원에 모으고

전통 한옥에 양악을 흘리는

다름의 어울림으로

기쁨이 살뜰한

일모의 봄이었다’



이 문자를 받은 오 전 대사는 “참 좋은 자리였다”고 화답했다. 그날 음악회 중간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연주자들의 음악 소리에 끼어들었는데 뜻밖의 화음이어서 흥미로웠다. 윤 위원장은 종소리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음악회를 하는 시간에 집 앞의 안동교회에서 종을 쳐서 모두 웃은 적이 있습니다. 오후 5시에 12번 친다고 해요. 그래서 종 치는 동안에 음악회를 쉬었지요. 이젠 교회에서 음악회 하는 것을 알고 그 시간엔 종을 치지 않습니다, 하하. 새들은 플루트와 바이올린 소리에 반응을 하더라고요. 새 울음도 다들 재미있어합니다.”

―야외 음악회인데도 연주 소리가 흩어지지 않더군요.

“한옥의 처마가 깊어 소리를 받아내기 때문에 듣기가 좋습니다.”

조선시대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윤보선 고택은 1918년에 윤 위원장의 조부가 샀다고 한다. 과거엔 행랑채, 큰사랑채, 곳간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고 안채, 안사랑채, 산정채, 별당채, 대문채 등이 남아 있다. 집 안에 있지만 산속의 별채와 같다는 뜻을 지닌 산정(山庭)채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이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여기에 정치인들을 모아 중요한 정치 현안을 논의했던 까닭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젊었을 때부터 여기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된 이들의 가족이 모이는 거점이기도 했다. 고택은 현재 1400평에 건평 250평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큰 집임에도 위압적이지 않고 조촐한 느낌을 주더군요. 관리도 깨끔하게 돼 있고.

“절제와 품위가 있는 게 우리나라 문화재의 특징이지요. 관리가 잘돼 있다고 하시니 고마운데, 자세히 보시면 허름한 구석이 많이 있을 거예요.”

―이날 음악회에 온 프렌즈는 사회 각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온 이들이더군요. 모두 가깝게 지내십니까.

“다 가깝게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회에 와 주시는 분들이니 고맙게 생각하지요. 대부분 부부로 오시는데, 그분들을 모시느라고 축제 스태프들이 고생합니다. 저희 부부는 하는 일 없이 생색만 내는 것이지요.”

그는 그러면서 이날 참석한 프렌즈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꼽은 후 다른 대화를 나누다가 “그날 김종량 한양대 이사장과 가수 싸이의 아버지인 박원호 디아이 코퍼레이션 회장도 왔었다”고 했다. 프렌즈의 후원과 참여를 귀하게 대접해야 하는 집행위원장의 품이 느껴졌다.

―각국의 주한 대사들이 온 것을 보니까, 음악회가 민간 외교 마당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년 부부 동반으로 20여 명쯤 옵니다. 올해도 영국, 일본, 이탈리아, 스웨덴, 터키,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독일, 유럽연합(EU), 이스라엘 대사가 왔고요, 미국 대사는 출장 중이어서 다른 외교관이 왔습니다. 영국문화원장도 왔지요.”

―인사 말씀을 할 때 들으니 영어가 유창하던데 역시 미국 유학을 하신 덕분이겠죠.

“제가 고교부터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다녔어요. 군 복무를 하느라 잠시 귀국했고 제대 후 다시 미국으로 갔죠. 대학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에는 와이셔츠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어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같이한 사업이었는데 8년 정도 하다가 우리나라로 들어왔지요.”

그는 귀국 후 건축자재 사업을 하면서도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특히 국제로터리 활동을 활발히 해서 2016년에 경기 고양에서 열린 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을 정도였다. 몽골 고비 사막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한 방풍림 조성 작업을 주관하기도 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위원회 이사장을 맡은 적도 있다.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은 선대로부터 배운 것인가요.

“저로서는 정치 쪽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것 같습니다. 사회 활동을 하면서도 너무 드러나면 정치하려는 것처럼 비칠까 봐 일부러….”

―윤 전 대통령의 아들로서 부담감이 컸습니까.

“청소년 시기에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살았습니다. 늙은 부모님께서는 여기서 자식 생각에 힘들었을 것입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게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름에 흠집을 내지 않으면 제가 잘사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 시각으로는) 그게 잘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 하하.”

―윤 전 대통령은 조선 시대 선비와 영국 신사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정치인으로서 친화력은 없어 보였는데….

“맞습니다. 후배 정치인들이 추종하는 그런 부분은 없었던 듯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단단한 조직이 없었습니다. 본인 성격도 있겠지만, 독립운동가로서 일본에 대항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갈라서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스스로 외길로 몰아세운 듯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집스러움이 있으셨으니 (세상 풍파를) 버티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부친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4·19 후 대통령이 된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서 잠시 생활하다가 5·16 군사정변을 만났다. 당시 10대 초반이었던 그는 장도영, 박정희 장군이 청와대에 지프를 몰고 온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5·16을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3공화국 이후 박정희 정권을 견제하는 야당 거목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해 잘못한 부분이 있으나, 산업발전과 근대화에 공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단점을 들추기 쉽지만, 그러면 후세가 배울 게 없습니다. 장점을 보면 배울 게 있습니다. 그런데 늘 단점만 들추려 하니 안타깝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저희 아버지도,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단점도 있으나 장점도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그 좋은 점을 배워서 미래로 가는 지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세가 부족한 듯해서 아쉽습니다. 스스로의 역사를 자학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되는 거죠.”

인터뷰 = 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mail 장재선 기자 / 문화부 / 부장 장재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관련기사 ]
▶ “자식 둘 美유학 보낸 뒤 집안서도 색안경 착용… 눈물 흘렸던 …
[ 많이 본 기사 ]
▶ “일본놈들 발광에 아무 말 못한 文…그대야말로 친일파”
▶ 김성태 “남부지검장, 생을 달리한 故정두언 수사”
▶ “파리 ‘누드 공원’, 파리꾀듯 관음증·노출증 환자로 몸살”
▶ “겨울옷 안사야 유니클로 타격”…정교해지는 日제품 불매..
▶ “만지고 끌어안고”…보험사 여직원들, 강제추행 팀장 고소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민경욱, 페북에 “미친 또라이 일본놈들” “선대인 친일파”“한 나라 대통령이나 되는 분께서 그러시면 되겠는가”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
mark김성태 “남부지검장, 생을 달리한 故정두언 수사”
mark“만지고 끌어안고”…보험사 여직원들, 강제추행 팀장 고소
“겨울옷 안사야 유니클로 타격”…정교해지는 日제..
러 “영공침범 없었다… 오히려 한국 조종사가 위협..
‘버닝썬 유착’ 강남서 경찰관 152명 전출…전체인원..
line
special news 황병승 시인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시인 황병승(49) 씨가 경기도 고양에 있는 자택에서 24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고 유족이 전했다.황 씨는..

line
‘극단원 성추행’ 이윤택 징역 7년 확정…“꿈과 희망..
침범한 중·러, 억지주장 日, 방관하는 美… 열강의 ..
5년전 이어… 정주영회장,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photo_news
“파리 ‘누드 공원’, 파리꾀듯 관음증·노출증 환..
photo_news
6살 유튜버 보람이 가족회사, 95억 청담동 빌딩..
line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illust
소헌왕후 정신적 外傷 극복 비결은, 외조부 큰 사랑·남편 세종..
[인터넷 유머]
mark혼전계약서 mark음양의 법칙 등
topnew_title
number 한국당 총선 필패론
피에로 가면 쓰고 원룸 침입시도 영상 논란
마동석·청각 장애인…마블의 영리한 캐스팅
‘프듀’ 투표 조작의혹에… 뿔난 팬들, 변호사..
17세 소녀 시신 사진, 인스타그램에 20시간..
hot_photo
호날두, 인스타그램 수입 11억5천..
hot_photo
“시야 가리지마라”…129억 내고 ..
hot_photo
쯔양, 학교폭력 의혹 해명 “내가..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