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당 1건… “차라리 ‘시위대의 광장’이라 불러라”

시위·행사에 빼앗긴 광화문광장

2016년부터 692건 ‘와글와글’
정치집회도 문화제 신고 땐 허가
서울시 안일한 대처 시민만 불편

‘시민의 광장’을 표방한 광화문광장에서 최근 3년여간 700차례 가까이 각종 행사가 열리며 시민 피로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회·시위대가 평일부터 주말까지 광장을 점령하고 정치·이념 구호를 외치거나 불법 시설물까지 설치해 광화문광장이 ‘시위대의 광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규정상 광화문광장에서 정치집회를 열 수 없지만 ‘문화행사’ 등으로 신고할 경우 제한 없이 사용 허가를 내주는 서울시의 안이한 인식이 이 같은 상황을 부추긴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5월까지 문화제나 공연, 기념식, 캠페인 등 광화문광장에서의 행사 허가 건수는 총 692건에 달하고 있다. 3년 5개월 동안 1.8일당 1건씩의 행사가 꼬박 이어진 셈이다. 연도별로 2016년 182건, 2017년 220건, 지난해 208건에 이어 올해 5월 현재 82건의 행사가 허가를 받았다. 특히 올해의 경우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허가받은 행사는 23건이었다.

이날 광장 한복판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에는 대한애국당이 지난 10일 오후 기습 설치한 농성 천막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100명에 가까운 보수단체 회원이 천막 안팎을 지켰다. 근처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는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소리의 군가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와 길을 가던 시민이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근처를 지나던 임모(39) 씨는 “외국인 관광객도 지나다니는데 부끄럽다”며 “불법 천막은 빨리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미 시가 제시한 시한이 지난 만큼 계속 철거를 거부할 경우 시기를 봐서 행정 대집행에 나서겠다”고 했다. 시는 대한애국당 측에 하루 7만2000원가량 변상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몇십m 떨어진 세월호 추모시설 근처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단체 및 관련 시민단체가 사고 진상규명 및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한 시민은 “세월호 유가족 사정은 안타깝지만 외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는데 이제는 그만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세월호 유가족 단체는 2014년 7월부터 2019년 3월까지 1708일간 불법 세월호 천막을 유지하면서 1891만5000원의 변상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시민의 여가 및 문화활동을 위해서만 광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광장에서 만난 대다수 시민이 “가뜩이나 광화문광장에서 행사가 많이 열려 피로도가 심한데 ‘문화제’라는 이름만 붙인 정치적 목적의 집회·시위가 대부분이어서 일부러 광장을 피하게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금인상 등을 내세우는 노동단체의 대규모 집회도 꾸준히 이어지며 교통체증과 시민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광화문광장 사용 기준에 대해 차별 없이 보편적 원칙을 적용하고 불법 집회는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영·이후민·조재연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