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무연고 아동들이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삼동소년촌 실내의 ‘뻔뻔 유아 놀이터’에서 암벽 오르기를 하면서 놀고 있다. 삼동소년촌 제공
서울 상암동 ‘삼동소년촌’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
어린이집 무상보육도 소외받아
못 놀면 성장 발달 뒤처질 우려
창고 개조해 암벽 등 설치하고
전문강사 놀이 활동 진행하니
표현력 늘어가고 표정 밝아져
한국에 베이비박스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가로 70㎝, 높이 60㎝, 깊이 45㎝로 영아 1명이 들어갈 공간의 베이비박스는 부양능력이 없는 부모에 의해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곳에 남겨진 아이들은 경찰 조사를 거쳐 보육원 등으로 보내진다. 한 해 평균 서울 시내에서 200여 명 영아의 부모가 베이비박스 문을 연다. 베이비박스 문 앞에는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여기에 넣어주세요’ ‘출생일을 꼭 적어주세요’ 등의 문구가 붙어 있다.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삼동소년촌에서 4명의 ‘버려진 아이들’을 만났다. A 군은 2015년 6월 23일 보육원인 삼동소년촌에 입소했다. 남겨진 편지에는 ‘2015년 4월 25일 오전 1시 37분에 태어났습니다. 몸무게는 2.92㎏입니다. 죄송합니다. 20살 미혼모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머지 아동 3명은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날이 생일이 됐다. B 군의 생일은 2015년 11월 8일이다. ‘미안해, 널 이쁘게 키워야 하는데 엄마에겐 그런 능력이 당장 없어서 이렇게 널 두고 간다’는 편지가 동봉됐다. C 군은 벚꽃이 한창인 2016년 3월 12일 이곳에 왔다. C 군을 남겨둔 이는 ‘한 달 안에 데려가겠습니다. 그때까지 맡아주세요’라고 부탁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D 군의 엄마는 2016년 6월 15일 ‘용서해다오, 정말 많이 사랑하는데 널 키울 수 없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글귀를 남겼다. 삼동소년촌은 2012년 처음 무연고 베이비박스 아동들을 받아들였고, 지난해까지 모두 41명의 영아가 이곳에 유입됐다. 하윤주 삼동소년촌 생활지원팀장은 “4명의 성과 이름은 모두 이곳에서 지어졌다”며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태어난 무연고 아동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서 왔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순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유희는 인간의 본능이다. 아이들은 특히 더 잘 놀아야 한다. 유년시절 놀이가 뇌 발달뿐 아니라 정서와 인지 발달, 나아가 사회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 전문가들도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창의력과 집중력을 키운다고 입을 모은다. 유엔은 이미 1959년 ‘아동권리선언’을 통해 ‘사회와 공공기관은 아동들의 놀 권리가 한층 더 보장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천명했다. 삼동소년촌의 아이들은 잘 놀지 못했다. 영유아를 보육할 수 있는 환경이 미처 마련되기도 전에 베이비박스 입소가 진행돼 발달에 필요한 정서적·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전문적인 시설이 부족했다. 하 팀장은 “아동 양육시설에서는 만 3세 미만 아동들에게 무상보육이 지원되지 않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주 1∼2회쯤 인근 키즈카페를 찾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 팀장은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언어, 발육 등이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걸음마를 시작할 때까지 놀이공간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삼동소년촌 식구들의 바람은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진행한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위한 놀이·문화 환경개선’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비로소 빛을 발했다. 그해 7월부터 삼동소년촌은 어린이재단과 무연고 영유아를 위한 실내 놀이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영유아를 돌보고 있는 관계자를 대상으로 참여토론회를 거쳐 창고로 사용하던 공간을 최종 후보지로 선택했다. 그리고 5개월 뒤인 12월 마침내 ‘뻔뻔(Fun-Fun) 유아 놀이터’를 개장, 열매를 맺었다. 맑은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야외 놀이터 찾는 날을 학수고대했던 아이들은 이제 날씨와 상관없이 뛰어놀 수 있게 됐다. 놀이터는 영유아 발달 맞춤형으로 설계됐다. 트램펄린, 암벽 오르기 등 대근육 발달을 위한 구조물을 갖췄고, 정서 발달을 위해 정기적인 놀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작은 방은 놀이치료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독서습관을 기를 수 있는 작은 독서실도 조성했다. 1주일에 한 번은 전문강사가 투입, 인형·블록 등을 활용한 ‘오감 놀이 활동’도 직접 진행한다. 하 팀장은 “삼동소년촌의 모든 직원, 취학 아동들까지 어떤 놀이시설이 필요한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며 “영유아의, 영유아에 의한, 영유아를 위한 놀이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라고 강조했다.
4명의 버려진 아이들은 뻔뻔 유아 놀이터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3㎏이 채 안 된 미숙아 상태로 입소했던 A 군은 어느덧 삼동소년촌의 ‘근육맨’을 담당하고 있다. B 군과 C 군은 또래에 비해 언어 발달이 늦지만, 놀이터에만 가면 ‘방언’이 터진다. 양육자들은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최대한 많은 단어를 사용해 가며 표현력이 늘어가는 두 아이를 바라볼 때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고인다고 했다. 내성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강했던 D 군은 인형놀이를 통해 배려심을 배워 나가고 있다. 자신이 맡은 ‘히어로’ 역할에 몰입하면서 놀이 이후에도 남을 더 생각할 줄 알게 됐다고 한다. 현재우 삼동소년촌 원장은 “오감발달 수업 등 정기적인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집에서만 생활하던 아이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자극을 받게 돼 일상생활에서도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양육자까지 함께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는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
* 시대의 빛과 거울이 될 훌륭한 인재 양성을 위해 오늘도 교육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며 사랑을 베푸는 선생님들의 값진 사연을 전해 주세요. 제보 및 문의 : teach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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