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미사일 정보 국한, ‘1급 기밀’은 제외… 日선 통신·위성정보 제공
‘3國’ 협력 필요불구 ‘맞불성 파기’…‘동맹’ 美와 갈등, 中은 ‘내심 환영’
양국, 같은 수준 비밀정보 교환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후에도
최소 3차례 이상 교환 이뤄져
잠수함 동향·SLBM 자료 등
北관련 軍정보력 타격입을듯
日은 “유감” 표명뒤 韓대사 초치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 이후
규제 품목 추가 확대 가능성도
北선‘을사늑약’비유 파기 요구
韓·美·日 공조 와해 노림수 분석
문재인 정부가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결정하면서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는 ‘한·일 관계의 신뢰 손상’과 ‘안보 우려’를 종료 이유로 설명하면서 “양국 간 안보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으므로 협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협정 당사자인 일본보다 오히려 미국이 “한국이 안보 환경을 오판하고 있다”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이번 결정이 한·일 양자 관계 차원을 넘어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정책의 기본 틀인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해치는 데다, 북핵 대응은 물론 대중 견제까지 어렵게 한다면서 오는 11월 22일 종료일 이전에 결정을 취소하라고 연일 요청하고 있다. 급기야 “주한미군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직접적 비판까지 내놓았다. 한·일 갈등을 넘어 한·미 동맹 위기로까지 번지게 만든 지소미아는 무엇이길래 미국이 이처럼 반발하는 것일까. 정부가 미국의 강력한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소미아 연장 종료를 선택한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2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지소미아 종료라는 최종 결정 전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연장 종료를 원할 경우 일본에 통보를 해줘야 한다는 협정에 따라 통보 시한인 지난 24일까지도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정부 안팎에서 흘러나올 정도였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에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해 종료 결정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결국 정부는 시한을 이틀 남겨두고 종료를 전격 선언했다. 청와대가 밝힌 공식 이유는 “양국 간 민감한 군사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청와대는 결정 당일 중국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일본이 경제보복 조치 철회 요구에 불응하면서 외교적 해결 시도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일본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이라는 과거사 문제로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한 만큼, 우리 역시 안보 사안인 지소미아로 대응한다는 ‘맞불’ 성격이 강하다. 중재에 적극 나서지 않는 미국의 관여를 끌어들이려는 효과도 노렸던 것으로 보이며,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반일’ ‘극일’을 활용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 美는 연일 파기 비판
미국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지소미아 연장이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미국 국무부는 이달 들어 연일 “지소미아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고 지역 안정 및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 노력에서 중요한 수단”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동북아에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두 축으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 중인 미국은 북핵 대응과 대중 견제 차원에서 한·미·일 3각 공조가 필수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지소미아 체결 당시에도 미국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22일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 것이 대표적으로, 이후 비판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다. 지난 23일에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미국이 “이해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을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한 미국 정부 소식통의 반응도 나왔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28일 이에 가세했고, 국무부는 연일 “지소미아 파기는 주한미군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킨다” “한국이 11월 22일까지 결정을 바꾸길 바란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3. 日은 유감 표명
일본 정부는 지난 22일 한국의 결정이 발표된 직후 “극히 유감”이라는 뜻을 밝히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이례적으로 발표 당일 밤에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조치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결정 이전부터 “지소미아는 연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피력해왔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는 외교적으로 매우 어려워져 있다”면서도 “북한의 핵·미사일이라는 공통 과제가 있으므로, 국방 당국 간 정보 교환을 원활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지소미아는 매우 중요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이번 결정을 빌미로 추가 보복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관측이다. 당장 28일 시행된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규제 품목을 확대하거나, 비자 발급 제한 등의 추가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4. 中의 입장은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8일 ‘한국의 지소미아 취소 결정은 미국의 외교전략에 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지소미아 종료는 한·미·일 3국 관계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한국이 미국의 외교전략에 대해 저항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매체는 미국이 문재인 정부에 지소미아 유지를 강조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실도 상세히 전했다. 중국은 한국의 이번 결정으로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안보 체계가 흔들릴 것으로 보고, 이를 계기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압박하는 외교적 공간이 창출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5. 北은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은 내부 매체를 통해 지소미아를 ‘을사늑약’에 비유하며 지속적인 폐기를 주장해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30일 ‘매국협정 폐기를 위한 대중적 투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근혜 정권이 일본 반동들과 공모·결탁해 조작해 낸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침략적인 ‘3각 군사동맹’의 구축을 위한 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1000년 숙적에게 군국주의 부활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조선반도 재침의 길을 열어준 매국협정, 전쟁협정”이라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일본의 우경화에 협력한다는 비판이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핵·미사일을 두고 한·미·일이 공조하는 틀 자체를 우려해왔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이 같은 한·미·일 이간계는 일종의 ‘갓끈 전략’으로 보고 있다. ‘갓끈 전략’이란 남한은 미·일이라는 두 개의 끈에 의해 유지되는데, 이 중 하나만 잘라도 머리에서 갓이 날아가는 것처럼 한·미·일 연대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는 전략이다.
6. 파기때 韓 군사적 손실은
우리 정부가 입을 가장 큰 손실은 대북정보 감소다. 정부는 지소미아를 통해 북한의 주요 잠수함 기지 동향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분석 자료 등을 일본 측으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북한의 SLBM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보가 끊기게 되면 우리 군 정보력 및 감지능력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 지소미아 파기는 한·미·일 3각 공조의 약화라고 북한이나 중국 등이 오인할 수 있는 소지도 크다. 당장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8월 초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및 독도 영공 침범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한·일 갈등과 이에 따른 한·미·일 공조 약화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7. 지소미아는 무엇인가
지소미아는 동맹 등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가 비밀 군사 정보를 제공할 때 제3국으로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맺는 협정이다. 한·일 지소미아의 정식 명칭도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건국 이래 한·일 양국이 맺은 첫 번째 군사 협정이다. 북한군과 북한 사회 동향, 핵·미사일에 대한 정보 등을 공유하기 위한 틀로 보면 된다. 한·일 지소미아는 2급 이하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데서 보안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담고 있다. 1급 군사 비밀은 교환 대상이 아니다.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사안별로 엄격한 검토를 거쳐 같은 수준의 비밀 정보를 교환한다. 21조에는 협정 유효기간이 1년으로 규정돼 있다. 어느 한쪽 당사자가 다른 쪽 당사자에게 이 협정을 종료하려는 의사를 90일 전에 외교 경로를 통해 서면 통보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1년씩 연장된다. 역으로 지소미아 연장을 원치 않으면 90일 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올해의 경우 통보 시한이 8월 24일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지난 22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발표후 취재진에게 한국에 전달한 항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지소미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일본이 먼저 체결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추진됐다. 2011년 1월부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2012년 6월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처리하려다가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체결이 무산됐다. 2016년 재추진 논의가 시작됐는데, 북한이 4·5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미·일 군사 협력의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그해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연내 체결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체결은 급물살을 탔다. 11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016년 12월 23일 발효됐다. 이후 매년 자동 연장돼왔다.
9. 실제 운용 방식
한·일 지소미아는 북한 핵·미사일 영역에서만 서로 정보를 주고받게 돼 있다. 어느 한 국가가 응하지 않으면 정보 교환이 성립되지 않는다. 운영 방식은 양측 중 한쪽이 안보 라인을 통해 정보 요청을 하면 지소미아 협의 사항에 해당하는지 확인한 후 정보를 보내는 방식이다. 일본이 지난 2일 각료회의를 통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내린 후에도 최소 3차례의 정보 교환이 이뤄졌다. 경제·외교 문제와 무관하게 양측 간 맺은 합의이기 때문이다. 이 3차례는 지난 6일, 10일, 16일로, 모두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일으킨 날이다. 세 번 모두 일본 측 요구에 한국이 응하는 방식으로 지소미아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10. 기타 국가와 체결 현황
정부는 북한이 핵·미사일 전력을 강화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대북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현재 35개국과 군사비밀정보보호에 관한 협정 또는 약정을 맺고 있다. 이 중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21개국과는 협정을, 나머지 13개국 및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는 약정을 체결했다. 이 중 일본과는 지소미아 종료에 따라 오는 11월 23일부터는 목록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이에 더해 지난 26일 국무회의를 통해 태국과의 지소미아 체결을 의결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태국을 방문하는 9월에 양국 간 체결을 공식화할 방침이다.
김영주·유민환·정철순 기자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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