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조국 딸 논란으로 본 ‘의학논문 저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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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개념·설계 혹은 데이터 수집·해석 등에 ‘지적’으로 공헌
기여도 가장 크면 ‘제1저자’… 학술적 참여 적으면 ‘선물저자’

2008년 논문 윤리가이드라인
단순 자료수집은 저자서 제외

책임저자일땐 출판·검토 포함
공동저자 교신까지 모두 관여
연구과정 학문적 기여 크지만
명단 제외된‘유령저자’도 있어

실험 성과 영어로 정리 조국 딸
영작·번역은 ‘저자 자격’ 안돼
병리학회, 오늘 취소 여부 논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논란을 계기로 논문의 ‘제1저자’ ‘책임(교신)저자’ ‘선물저자’ 등 일반인에게 생소한 단어가 신문 지상에 오르내려 개념이 무엇인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 후보자의 딸 조모(28) 씨가 한영외고 재학 시절인 2008년 단국대 의과대학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 동안 인턴 과정을 수행하면서 제1저자로 등재된 의학 논문은 쟁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조 씨는 고교생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대한병리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이 논문에 관여한 6명의 저자 가운데 제1저자로 등재됐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 후보자는 “지금 시점에서 보게 되면 고등학생이 제1저자로 돼 있는 것이 의아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면서도 “당시에는 1저자와 2저자 판단 기준이 느슨하거나 모호하거나 책임교수의 재량에 많이 달려 있었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과연 조 후보자의 해명은 타당할까.

◇의학 논문에서 저자의 기준 = 조 씨가 인턴 생활을 하기 전인 2008년 1월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는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관련 논문 내용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뒤였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논문의 저자란 ‘출판하는 논문의 연구에 실제적인 지적 공헌을 한 사람’을 뜻한다. “중요한 학문적, 사회적, 재정적 연관성을 가지며 연구에 충분한 참여를 하고 내용의 일정 부분에 대해서 적합한 부분의 공적 신뢰성을 가지는 자”가 저자의 자격이다. 저자는 ① 연구의 개념과 설계에 참여 ② 데이터 수집과 해석 담당 ③ 발표 초안 작성에 참여 ④ 발표 최종본 승인 등을 통해 연구에 기여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은 “연구에 있어서 단순 재정 취득, 자료수집, 일반적인 감독의 역할인 경우에는 저자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며 대신 ‘감사의 글’ 부분을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논문에 학술적으로 유의미한 기여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저자로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과연 조 씨를 해당 논문의 저자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조 후보자는 2일 기자회견에서 “저희 아이가 영어를 조금 잘하는 편”이라며 “실험하고 참석하고 난 뒤에 논문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연구 성과와 실험 성과를 영어로 정리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논문의 책임저자였던 장영표 단국대 의대 교수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조 씨가 논문을 영어로 작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작 또는 번역은 저자의 자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제1저자, 책임저자, 선물저자 = 인문 계열 논문은 비교적 저자 수가 적어 1인 저자인 경우도 많지만, 이공계 논문은 연구의 복잡성 때문에 통상적으로 다수의 저자가 참여한다. 2013년 개정된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은 영국 출판윤리위원회(COPE) 가이드라인을 인용해 “일반적으로 논문에서 기여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제1저자가 된다”며 “제1저자는 연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러 명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가 다른 논문에서 인용될 때는 대개 제1저자의 이름을 따서 ‘A 등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제1저자는 해당 연구를 대표하는 연구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책임저자는 논문의 작성에서부터 출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책임을 지는 위치다. 논문의 내용과 결과를 검토하고, 공동저자들 간 교신 역할도 담당한다. 학술지 편집인에게서 논문 심사의 논평과 수정사항 등을 받아 처리하고, 독자들의 연락을 받아 답변하기도 한다. 조 씨의 제1저자 등재에 관해 장 교수가 지난 3일 검찰에 소환된 이유도 해당 논문의 책임저자로서 저자 등재 여부 및 순서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선물저자(공짜저자)는 해당 논문의 저자 자격이 없거나 부족한 연구자를 저자에 포함해 주는 것이다. 연구자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 등이 작용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연구기관의 장이나 은사 등 손윗사람을 저자에 포함하는 경우 ‘명예저자’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반대로 연구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아랫사람이란 이유로 저자에서 빠지는 경우를 ‘유령저자’라고 부른다.

◇의학계 반응은 = 의학계에선 2008년 당시 17세였던 조 씨가 학술지 논문의 제1저자가 될 만큼 연구에 공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여론이 대다수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 씨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제1저자에 해당하는 기여를 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장 교수에게 논문 자진 철회를 권고했다. 대한의학회도 지난달 입장문을 통해 “연구가 진행된 시기와 제1저자가 연구에 참여한 시기를 고려하면 조 씨가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이 저자 기준에 합당한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의학회는 단국대와 대한병리학회에 진상을 규명해 의학 연구 윤리를 확립해줄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해당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했던 대한병리학회는 5일 회의를 열어 직권 취소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