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삶’ 위해 사투… 개·취·존이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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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시작, 2020년 내다보는 책 4권

트렌드 모니터 2020 / 최인수 등 지음／시크릿하우스
2020 트렌드 노트 / 염한결 등 지음／북스톤
트렌드 코리아 2020 / 김난도 등 지음／미래의창
밀레니얼 이코노미 / 홍춘욱·박종훈 지음／인플루엔셜

2020년을 전망하는 책들이 이번 주 잇따라 나왔다. 보통 10년 단위로 바뀌는 해는 더 각별히 바라보기 마련이다. 서구에서 2020년은 ‘밀레니얼 세대’(1981∼1996)가 경제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는 시기로, 또 스마트폰·SNS와 함께 성장한 Z세대(1995∼2003)가 사회진출을 시작하는 시기로 주목받는다. 경제적으로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시작, 그리고 기술적으로 이른바 4차 산업을 주도할 ABCD(인공지능(AI)·블록체인(Blockchain)·클라우드(Cloud)·데이터(Data)) 기술이 ‘도입기’를 지나 ‘혁신 폭발기’로 진입하는 해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2020년은 그다지 밝은 트렌드의 전망을 보여주진 못한다. 저성장과 베이비붐 세대의 이중의 질곡에 끼여 세대교체 진입을 못 하는 ‘지연된 밀레니얼’ 세대와, 선배들보다 높은 ‘스펙’을 쌓았지만 가질 수 있는 자원은 현저하게 적을 게 분명한 Z세대는 ‘외로움’ ‘혼자 라이프’의 트렌드를 더 극단적 형태로 몰고 갈 것으로 예상됐다. ‘혼자’가 이제 ‘외로운 상태’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자리 잡으며 개인의 취향이 소비와 문화 전반에 미치는 변화가 훨씬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2020년을 내다보는 책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근래 우리 사회의 무거운 화두가 된 ‘세대론’을 중심으로 ‘2020 트렌드’가 전개될 것 같다.

리서치 전문기업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연구진이 펴낸 ‘트렌드 모니터 2020’(최인수 등 지음／시크릿하우스)은 내년도 소비 트렌드 변화의 핵심 키워드를 ‘외로움’으로 뽑았다.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2017년: 개인의 감정’ ‘2018년: 1인 체제’라는 키워드에서 ‘2019년: 공적 영역까지의 1인 체제 확산’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2018년 처음 언급한 용어인 ‘개인화된 사회성(Customized Sociality)’이 보다 더 극단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의 취향’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흐름이 공고해지고 있다. 취향에 따라, 세대에 따라 입장이 제각각이다 보니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뾰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 시대가 되면서 클립영상, 유튜브, 팟캐스트, 넷플릭스 등 ‘주문형 콘텐츠 소비’로 미디어 시장이 바뀌고 있다.

인간관계 역시 개인의 취향을 따라가고 있다. 아는 사람에 대한 감정 노동을 거부하고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는, 즉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단발적 관계의 재구성’을 한다. 수십만 원씩 회비를 내는 독서모임, 함께 운동하는 운동 플랫폼, 유료 회원제 사교 클럽 등 처음 만나더라도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선호한다. 인간은 사회성을 타고난 존재지만, 현재의 사회성은 ‘철저하게 개인화된 형태의 사회성’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유대감이 적어지면서, 공정성이라는 개념도 개인의 이해관계에 국한된다. 현재 청년 세대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에 대한 문제보다는, 구체적 상황에서 ‘내가 얼마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에 대단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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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분석기업 다음소프트 생활변화관측소가 펴낸 ‘2020 트렌드 노트’(염한결 등 지음／북스톤)는 매월 1억2000만 건의 소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2020년의 트렌드를 ‘혼자만의 시공간’이란 키워드로 압축했다. 빅데이터를 통해 드러난 더 핵심적인 ‘혼자 라이프’는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나 비혼의 확산과 같은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싱글이든, 육아와 자녀교육에 여념이 없는 30∼40대 부모든, 혹은 자녀를 다 키우고 한시름 놓은 이들이든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투하고, 1인용 삶을 ‘로망한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받았을 때 불같이 화를 낼 정도다.

직장인들은 평일 점심시간이면 혼자 헬스장으로 향하고, 주말이면 침대에서 넷플릭스 콘텐츠를 혼자 몰아본다. 육아에 치이는 엄마들도 ‘하나를 사면 5분 쉴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육아템’을 주문한다. 혼자 있는 시간만큼이나 혼자 있는 공간도 중요하다. 집을 꾸미기 위해 조명과 문고리에 대해 공부하고, 해외직구 사이트를 알아본다. 자기 취향대로 회사와 집의 책상을 꾸미는 ‘데스크테리어’(데스크+인테리어)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혼자 라이프’가 누군가의 외로운 ‘상태’가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에게서 삶을 꾸려가는 ‘태도’로 정착했다는 점이다. 혼자를 원하지만 어느 때보다 활발히 새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는 오프라인 친구보다 기존의 불편한 사회성을 제거하고 공감대만을 공유하는 친구를 찾고,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인간관계 대신 ‘반려○○’에게서 돌봄의 욕구를 충족한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20 전망인 ‘트렌드 코리아 2020’(미래의창)은 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초개인화 기술’이 뒷받침되면서 ‘나의 경험과 취향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성향’이 내년에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구에 맞춰 편리성이 프리미엄이 되는 ‘편리미엄’, 성공보다 행복과 재미가 조화된 성장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기계발형 인간인 ‘업글인간’의 등장, 단순히 팬덤에 속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팬슈머’, 신중년층이라는 이름으로 부상한 ‘오팔세대’의 행보 등이 2020년에 주목해보아야 할 트렌드로 꼽혔다.

‘밀레니얼 이코노미’(홍춘욱·박종훈 지음／인플루엔셜)는 2020년을 기점으로 변화될 밀레니얼 세대의 한국 경제를 두 명의 경제전문가가 전망한 책이다. 전 세계적으로 2020년을 기점으로 정보기술(IT) 혁명의 혜택을 입은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생산, 투자, 고용의 주축이 되는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적인,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유독 한국에서 이 세대의 시장 진입은 물론 소비, 투자, 고용 부문에서의 활약이 녹록지 않다.

그 원인은 ‘지연된 밀레니얼 이코노미’(delayed millennial economy)라고 저자들은 진단한다. 이전 세대에서 해결하지 못한 채 끌고 온 여러 구조적 문제들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가 주체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베이비붐 세대는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시기의 ‘크레바스’를 돌파하기 위해 정년연장을 요구해왔고 실제로 시행이 임박했다. 책은 한국 밀레니얼 세대의 위기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국내 최초의 미래학 연구·교육 기관인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미래전략연구센터가 각 분야 550여 명의 전문가와 함께 만든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 기술과 인간의 만남’(김영사)은 2020년을 기술과 인간이 ‘연결’을 넘어 ‘융합’의 단계로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