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내실을 튼튼히 다지는 ‘눈덩이 굴리기 리더십’으로 위기에 처해 있던 회사를 매출액 10배, 수출액은 무려 181배 증가한 대기업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 ‘눈덩이 굴리기’ 리더십
처음부터 단단하게 뭉치지 않으면 커지기 전에 부서져
- 20년…그 눈부신 성장
매출액 10배·영업익은 21배나 늘어… 세계12위 뷰티기업 선정도
- 한류를 넘어 제2도약
한류붐 타고 날다 ‘사드’ 타격 뒤 다시 회복세… 승부는 지금부터
지난 2014년, 미국 블룸버그가 매년 내놓는 ‘세계 200대 부자 순위’가 발표되자 국내 재계가 깜짝 놀랐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세계 200위 부자 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당시 서 회장의 재산은 66억 달러(약 7조1000억 원)로 추산돼 이 회장에 이어 ‘국내 2위 부호’에 오르기도 했다. 한때 이건희·이재용 부자와 서 회장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33조9494억 원(2014년 기준)에 육박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오랜 침체를 겪어 왔던 ‘K-뷰티’가 다시 살아나면서 ‘뷰티 한류(韓流)’를 이끌었던 서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 회장의 ‘눈덩이 굴리기 리더십’=서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K-뷰티를 이끌었던 아모레퍼시픽그룹 실적이 올해 3분기를 기점으로 되살아나면서다. 사드 사태에 내수 침체까지 겹치면서 침체기에 빠졌던 아모레퍼시픽그룹 실적이 3분기 들어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분기 아모레퍼시픽그룹 매출(연결 기준)은 1조5704억 원, 영업이익 1205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4%, 42.3% 증가한 것이다. 2분기 영업이익이 35.2% 감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턴어라운드’ 실적이다.
무엇보다 해외 사업에서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이 기간 해외 사업 매출은 9% 증가한 4865억 원, 영업이익은 33% 증가한 348억 원을 나타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약 7%, 북미지역에서는 54%가량 성장한 실적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서 회장의 리더십 중 하나인 ‘눈덩이 굴리기 리더십’이 다시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 회장은 경영을 ‘눈 굴리기’에 많이 비유한다. 눈 굴리기를 할 때 처음부터 눈덩이를 단단하게 뭉치면 굴릴수록 눈이 커지고 단단해진다. 그렇지만, 처음에 단단하게 뭉치지 않으면 눈덩이는 커지기 전에 부서지고 만다. 회사 경영도 처음부터 내실을 단단히 다져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회사 경영도 눈 굴리기와 같아서 에센스화를 어떻게 성취하느냐에 기업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경영 철학을 자주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실제, 서 회장은 지난 10월 임직원들에게 전달한 정기조회 메시지에서 “팬덤(fandom·특정 인물 및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며 “팬덤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위챗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이를 잘 활용해 ‘C&C’(Communication & Commerce)가 유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눈덩이’를 굴려 나가는 작업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의 회사를 K-뷰티 선두 기업으로=서 회장의 ‘눈 굴리기 경영론’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아도 단단하게 내실을 다지면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는 경영철학을 잘 반영해 준다. 서 회장은 언론과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는 ‘은둔형’ 리더로 유명하다. 철저한 ‘현장 경영론자’이지만, 대중에는 얼굴을 많이 내비치지 않는다. 2014∼2015년 서 회장이 국내 최고 부호로 떠올랐을 때 “서경배가 누구냐”며 의아해하던 사람도 많았다.
당시 주식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 주식은 그야말로 ‘황제주’로 칭송받았다. 2014년 초까지만 해도 100만 원대에 머물렀던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이듬해 서 회장이 액면분할을 결정하기 전까지 400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재계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서 회장이 2014년 세계적인 부호로 갑자기 부상한 것은 그냥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이렇듯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서 회장의 눈 굴리기 리더십에서 온 것이다. 눈을 단단히 뭉치듯 묵묵히 내실을 다져온 아모레퍼시픽이 한류 붐을 타면서 진면목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서 회장이 부친인 고 서성환 태평양화학공업(현 아모레퍼시픽그룹) 창업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을 당시 회사 경영 환경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서 회장은 1997년 3월 ㈜태평양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회사 경영 일선에 나섰다. 앞서 1986년 화장품 수입 개방 이후 경쟁이 격화되면서 화장품 사업은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던 터였다. 당시 태평양에서도 구조조정과 경영 혁신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태평양증권, 태평양전자, 태평양 돌핀스, 태평양패션 등 계열사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회사 존망이 위험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서 회장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주력 계열사를 모두 정리하고 화장품 전문회사로 탈바꿈하면서 난관을 돌파했다.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다.
서 회장은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회사의 21세기 비전도 명확히 했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의 정체성을 ‘미와 건강 분야의 브랜드 컴퍼니’로 정했다. 곧이어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선별해 경로별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등 전면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창업 이후 축적해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레티놀 2500’을 출시하며 기능성 화장품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아이오페’와 한방(韓方)화장품 연구의 결정체인 ‘설화수’ 브랜드가 잇따라 대성공을 거뒀다. 설화수는 지난 2015년 국내 뷰티 단일 브랜드 최초로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했으며, 국내 백화점 매출액 순위 1위를 10여 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5대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는 세계 뷰티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후 서 회장이 이뤄낸 경영성과는 눈부셨다. 아모레퍼시픽이 최전성기를 누렸던 지난 2016년과 서 회장 취임 이전인 1996년을 비교해 보면, 매출액은 10배(6462억 원→6조6976억 원)로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무려 21배(522억 원→1조828억 원)로 늘었다. 2016년에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패션·뷰티 전문 매체인 ‘WWD’(Women’s Wear Daily)가 선정한 ‘세계 100대 뷰티 기업’ 중 12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당시 94억 원이었던 수출액도 2016년 글로벌 사업 매출액 1조6968억 원을 기록하며 약 181배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서 회장의 눈 굴리기 리더십 결과가 2014년 ‘세계 200대 부자 리스트’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 평가는 이제부터=재계에서는 그러나 서 회장의 진정한 리더십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분석한다. 한류 붐을 타고 아모레퍼시픽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는 등 뛰어난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사드 사태 등으로 한류 붐이 가라앉으면서 아모레퍼시픽 실적도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한때 코스피 순위 5위(24조 원)에 올랐던 시가총액은 현재 7조6000억 원 수준으로 하락했고, 주가도 액면분할 이후 2016년 32만 원 수준에서 지난해 말에는 20만 원대로 주저앉았다. 재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의 향후 모습에 따라 이제부터야말로 한류 붐에 의지하지 않는 진정한 서 회장의 리더십이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서 회장은 최근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팬덤’을 일으켜 밀레니얼 세대를 고객으로 유입시키는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는 게 서 회장의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세대를 연결하는 ‘디딤돌’로서 아모레퍼시픽이 존재해야 함을 서 회장은 강조한다.
서 회장은 지난 5월 정기조회에서 “앞으로 우리가 고객의 사랑을 계속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품질의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 혁신이 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팬덤을 만들어가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고객의 사랑은 곧 팬덤”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있었던 창립기념식에서도 서 회장은 “‘희망은 먹구름이 몰려올 때’라는 어떤 시의 한 구절처럼 기업의 환경도 혼돈 속에 분명 기회가 있고 성장이 있다”며 “미래의 변화가 오늘을 결정한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뉴 뷰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도 발전하고 재미를 느낄 것이며, 새로운 아름다움은 분명 고객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회장의 리더십이 아모레퍼시픽에 또 다른 기회를 부여해 줄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 서회장의 인맥
화장품뿐 아니라 예술, 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서경배 회장은 학맥부터 기업인, 작가, 건축가, 과학자까지 다양한 분야에 깊이 있는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나이 : 56세
학력 : 경성고, 연세대 경영학과, 코넬대 경영대학원
이력 : 태평양화학 과장,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 대한화장품협회 회장,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사장,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 서경배과학재단 이사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신춘호 농심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김훈 작가.
신춘호 농심 회장
각별한 장인. 서 회장은 신춘호 농심 회장의 막내딸 신윤경 씨와 지난 1990년 결혼했다. 신 회장은 서 회장의 부친인 서성환 창업주와 친구 사이기도 했다. 신 회장과 서 회장은 일반적인 장인과 사위의 사이보다 더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성환 선대 회장이 돌아가시고 신 회장을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경영에 대한 조언도 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 회장은 지난 2015년 농심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 앞에 꼬불꼬불한 라면을 연상시키는 조형 작품 ‘컬러풀 스토리즈’를 깜짝 선물하기도 했다. 이 조형물은 서 회장이 김병호 작가에게 직접 의뢰해 제작한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서 회장의 CEO 인맥으로 대표적인 인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013년 서울상의 회장에 취임한 뒤 서 회장이 이어 2014년에 회장단에 합류했다. 회원사 영입전을 벌였던 당시 박 회장이 경쟁력 강화의 핵심 인물로 서 회장을 직접 영입하는 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이끄는 서울상의는 서 회장의 서울상의 부회장 선임 당시 “서 회장은 혁신 경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고 세계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며 국내 화장품 업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 산업계의 경쟁력 강화에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함께 토론하는 친구. 서 회장이 지난 2017년 발간한 저서 ‘멀리 보려면 높이 날아라’에는 특별한 추천사가 담겼다. ‘통섭 이론’으로 유명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서 회장과의 15년이 넘는 우정을 공개한 것. 최 교수는 추천사에서 “나는 통섭을 꺼내 들고 깊이 파려면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그는 멀리 보려면 높이 날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모레퍼시픽이 세계적인 기업이 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참 멋진 기업인”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와 서 회장은 학자와 기업인으로 만나 과학에 대해 토론하는 등 학문적 조력자로서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서 회장이 최 교수에게 ‘총, 균, 쇠’에 쓰인 문구의 정확한 의미를 묻고 새벽 2시까지 토론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서 회장은 특히 지난 2016년 사재 3000억 원을 출연해 서경배과학재단을 설립할 정도로 과학 분야에 대한 조예가 깊다.
김훈 작가
열렬한 팬. 독서를 즐기는 서 회장은 소설가 김훈의 오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에서 열린 사원 강연회의 강사로 김훈 작가를 직접 초빙했을 정도다.
‘남한산성’을 여러 권 구입해 사내 도서관에 비치하고, ‘칼의 노래’를 직접 직원들에게 나눠주거나 월례 조회에서 책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칼의 노래 속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실제 경영에도 반영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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