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넘쳐나는 스마트폰 있는데… 사랑은 왜 더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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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던 로맨스 / 아지즈 안사리,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최근 모바일 인터넷의 발달로
연애의 선택지 풍성해진 시대
사랑찾는 방식도 급격히 변해

사소한 문자 실수에 민감하고
현실과 다른 상대모습에 당황
결국 관계의 본질 바뀌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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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부부 5000쌍을 조사해보니 다른 도시의 상대와 결혼한 경우는 10쌍 중 둘도 안 되는 17.8%에 불과했다. 전체 3분의 1은 다섯 블록 안에 살던 누군가와 결혼했고, 같은 주소도 10쌍 중 한 쌍(12.64%)이 넘었다. 우리로 치면, 대개 같은 마을이나 이웃 마을의 갑순이와 갑돌이가 결혼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1950년대 평균 혼인 연령이 남자는 23세, 여자는 20세 전후였으나 2014년에 남자는 29세, 여자는 27세로 상승했다.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에선 30세 이상으로 높아졌다. 그 사이 남녀 간 만남과 사랑의 방식이 바뀌었고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그런데 불과 10∼20년 사이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이전과는 아주 달라진 SNS 시대의 사랑이 지배적인 상황이 됐다.

넷플릭스의 ‘마스터 오브 제로’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가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폭염 사회’ 등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와 손잡고 펴낸 ‘모던 로맨스’(Modern Romance)는 스마트폰 시대의 연애를 탐색한다.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 여러 도시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온라인 설문조사 및 여러 학자의 조언을 얻기도 했다. 본격적인 사회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연애 사회학의 ‘하이브리드’로, 2015년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주목받은 책이다.

책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 사람은 열렬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위해 결혼했다. 가족사회학자 앤드루 셔린이 ‘생존공동체 결혼’(companionate marriage)이라고 부른 결혼 형태다. 남자는 집안의 가장으로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집에 머물며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하는, 결혼해 이러한 가족을 이루라는 사회적 압력이 사랑 자체의 힘보다 훨씬 강했던 시절이었다. 사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결혼은 이처럼 생존과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바뀐 건 50년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총체적인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지고 여성의 교육과 사회 진출의 폭이 급속하게 넓어지면서 낯선 사람들로 채워진 대도시에서 살게 된 이후 세대는 ‘생존공동체 결혼’을 거부하고,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솔메이트 결혼’(soulmate marriage)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미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많이 연구된 내용이다. 요즘 싱글들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풍성한 연애의 선택지를 갖게 됐다. 스마트폰 등 기술의 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수많은 선택지를 정렬하고 걸러내서 남녀의 접점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는 얼마나 많은가. 예컨대 2005년에서 2012년 사이 미국에서 결혼에 성공한 커플 중 3분의 1이 인터넷에서 만났다. 싱글들이 스마트폰을 가졌다는 것은 “24시간 연중무휴로 영업하는 싱글 전용 클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며 “하루 중 언제든지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잠재적 연애의 망망대해 속으로 풍덩 빠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왜 요즘 싱글들은 연애 때문에 예전보다 더 힘들어할까. 저자는 “아주 짧은 시간에, 사랑을 찾는 방식의 문화 자체가 극적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는 싱글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우선 높은 기대치의 솔메이트를 찾는다는 것은 그 과정이 심각하리만치 큰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요즘 보면 싱글들은 솔메이트를 찾는지, 아니면 아예 포기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선택을 내리고 난 뒤에 이를 장담할 방법은 있는 것일까. 결혼이 늦어지거나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선택지를 넓혔지만 새로운 난관을 추가했다. 사람들은 현실 속 자아와 스마트폰 속 자아를 갖게 됐고, 사실 문자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과 실재의 사람은 아주 다를 수 있다. 말풍선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싱글들은 일종의 게임처럼 문자를 주고받고,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문자 하나 때문에 ‘썸’타던 분위기가 확 망가지는 것을 다들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결국 연애도 결혼도 모두 인간관계고, 얼굴을 맞대고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얼마나 필요한가. 선택지가 넓어졌다고 모든 상황이 좋아진 것만은 아니며, 예나 지금이나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연애와 결혼의 심층은 바뀌지 않은 걸까? 딱 부러지게 얘기하진 않지만, 안사리가 이번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결론 삼아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456쪽, 1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