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납북자 유족 보상, 헌재 본격 심리

“납북자법에 보상 규정 없어”
유가족 26명 작년 헌법소원
헌재, 각하 안하고 심판 회부
인정된 납북자 4782명 달해

6·25전쟁 중 북한에 납치된 전시납북자 유가족들이 국가 보상을 요구하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심판 회부 결정을 내린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10년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6·25납북자법)이 제정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헌재가 전시 납북자 보상 문제를 판단하게 됐다. 공식인정된 6·25전쟁 납북 피해자는 4782명에 달해 헌재 판단이 주목된다.

20일 유가족 이정자(여·70) 씨 등에 따르면 이 씨 등 26명은 지난해 11월 27일 접수한 납북자 보상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지난달 헌재로부터 심판회부 결정을 통지받았다. 헌재는 본격적인 재판을 하기 전에 사전심사 절차를 거치는데, 청구가 부적법하면 각하 결정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에 회부한다. 헌법소원을 낸 이 씨 등은 지난 2011년부터 진행된 진상조사를 거쳐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피해자들의 유가족이다. 6·25전쟁 당시 납북자는 10만여 명으로 추산되지만 실제로 인정된 피해자는 4782명이다. 다만 납북 주체가 북한인 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에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북한 정권의 납치로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수십 년 동안 행정기관의 연좌제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고통받아 왔다고 호소한다. 역대 정부에선 이들이 북에 있는 가족들과 연계될 것을 우려해 감시의 눈초리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납치돼 유복자로 태어난 이 씨는 “젊은 시절 외교관과 연애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연좌제에 걸려 외국에 못 나가고 불이익을 받게 돼 결국 포기했다”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도 경찰이 따라와서 주변에 동향을 캐묻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형이 북에 끌려간 김명기(79) 씨도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해 중학교를 그만뒀고, 외국에 근로자로 나갈 수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유가족 가운데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신체 발육이 부진하고, 교육 기회가 박탈돼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는 데다 공직 채용·승진에서도 배제된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나이가 70∼80대에 달해 지난 시절을 돌이킬 순 없지만, 국가의 보상이 있어야 실질적인 명예회복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입장이다.

헌재는 지난 2009년 전시 납북자가 법적 보호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평등권 침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선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6·25납북자법이 제정된 현시점에서는 헌재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씨 등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봄의 양규응 변호사는 “법률이 제정됐는데도 보상규정이 없는 것은 진정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며 “헌재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황도란 변호사는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라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