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인센티브, ‘착한 배려’를 없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타성을 무시하고 돈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인센티브는 인간이 이기적이며 도덕에 무관심하다고 전제한 데서 나왔다. 불공정이 심화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인센티브와 이타심 사이의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도덕경제학 / 새뮤얼 보울스 지음, 박용진 등 옮김 / 흐름출판

통치 · 경제학에서 보는 인간
기본적으로 ‘악인’으로 전제
감시·벌금·인센티브로 제약

사람들의 ‘자발적 행동’ 막고
이기심 가득한 ‘불평등’ 낳아
경쟁과 협력 사이 ‘균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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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어린이집 6곳에서 일과 후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자녀를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오히려 지각하는 부모의 수가 예전보다 두 배로 늘어났다. 12주 뒤에 벌금제도를 없앴지만, 이미 늘어난 지각 부모 수는 줄지 않았다. 지각하는 것에 가격(벌금)을 매기자 교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부모의 윤리의식이 훼손되고, 그 결과 지각을 자신들이 구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게 된 것으로 분석됐다.

2001년 미국 보스턴시 소방청장은 소방대원들의 병가가 월요일과 금요일에 몰려있다는 걸 발견하고 무제한 유급 병가제도를 15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급여에서 삭감했다. 그러자 소방대원들의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병가 신청이 전해보다 10배나 증가했다. 소방청장은 보복조치로 휴가 보너스를 폐지했는데, 이듬해 병가신청 건수는 1만3431건으로 전해의 6432건보다 크게 늘었다. 소방대원들은 ‘채찍과 당근’ 방식의 인센티브에 모욕감을 느꼈고, 그 제도가 강제되기 전 부상을 입거나 몸이 아프더라도 공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윤리의식마저 버렸다.

장 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있는 그대로의 인간(men as they are)을 놓고 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던 말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통치와 법체제, 경제와 기업 활동 등에서 기본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이타적인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그 핵심이었다. 통치에서는 ‘악한 사람’을 가정한 마키아벨리가 시초라면, 경제학에선 ‘인간의 이기심’과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애덤 스미스가 원조일 것이다. 이후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관점은 경제학의 오랜 믿음이다. 현대에 이르러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표현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며 도덕에 무관심하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법학자나 경제학자, 정책입안자들, 기업가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런 인간에 대한 관점이 다양한 경제적 인센티브라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저명한 경제학상 ‘레온티예프 상’ 수상자인 새뮤얼 보울스는 ‘도덕경제학’에 앞서 펴낸 ‘협력하는 종’에서 “인간은 역사적으로 이기적인 행위를 통해 별다른 이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해 왔기 때문에 협력하는 종으로 진화해왔다”는 인간관을 주장했다.

이 책의 부제는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센티브는 그 제도를 적용받는 사람들이 감시나 벌금 없이는 올바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앞에 든 소방청의 사례에서 보듯, 사람들의 관계와 윤리의식이 훼손된다. 또 경제적 인센티브는 자칫 도덕적인 판단 없이 이기적인 선택만으로 의사결정을 해도 된다는 사인을 준다. 무의식적으로 도덕과 거리두기를 해도 좋다는 암시다. 인센티브는 외부에서 강제되는 요인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자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든다. 이처럼 인센티브는 타인을 돕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인간의 이타적 본성을 ‘몰아내는’ 역효과도 불러온다. 저자는 이를 ‘몰아냄 효과’(crowding-out)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인센티브는 ‘몰아냄 효과’ 탓에 자본주의 시장을 이기적인 사람으로 가득한 불공정한 사회로 변화시켰을까? 저자는 자유주의적 법치와 사회보험 등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토대들이 시민적 덕성을 함양시키고 또한 도덕적 행동에 따르는 비용을 감소시켜왔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곳일수록 도덕적 시민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즉, 정치적 자유주의, 개방된 시장을 가진 사회일수록 경제적 분배가 건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1970년대 후반부터 고개를 든 자유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출현이다. 자유주의가 불평등을 심화하는 경제모델과 결합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떠오른 불공정의 문제를 경제학은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협력과 경쟁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 잡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며 ‘인센티브와 제약’ 그리고 ‘윤리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의 균형, 즉 그 사이에서 시너지를 낳을 수 있는 정책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저자는 “사람들은 거래하고 생산하고 투자하고 투표하며 ‘어떤 것을 얻으려 할’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의 행동 동기는 ‘획득 동기’에 맞춰져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체성 동기’에도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기심을 이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적인 동기를 유발·배양·강화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목표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이고 시민적 덕성을 갖춘 개인이란 전제 아래 이들의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덕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회규범이라는 문화적 토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388쪽, 1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