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탁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전 그런 프로 안 나갑니다.” 이런 답변 들으면 기분이 언짢다. 그런데 얼마 후 다른 채널에 생글생글 웃으며 그가 나온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유행어 조짐이 보인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유권자 입에서도 나올 성싶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사랑을 믿었었는데/발등을 찍혔네’.
이 노래를 부른 영탁(본명 박영탁·사진)은 2007년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로 데뷔했다. 무명시절엔 ‘히든싱어’(JTBC·2013)에서 휘성 모창능력자로 출연해 3라운드까지 진출했다.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건 ‘미스터트롯’(TV조선) 본선 2차 데스매치에서 NRG 출신 천명훈과 대결할 때 부른 강진의 ‘막걸리 한 잔’ 덕분이다. 준결승 레전드 미션에선 ‘또 만났네요’를 불렀다. 하지만 브로맨스 파트너 신인선은 더 이상 못 만나게 됐다. 점수는 210대 90이었다.
목요일 밤의 즐거운 소동을 통해 사람들은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도 보았고 꿈이 깨지는 과정도 보았다. 하지만 꿈을 깨야 새벽을 맞을 수 있다. 사회자 김성주는 말한다. “충격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충격은 누군가에겐 타격이고 누군가에겐 감격이다. 큰 차이 없는데 300대 0이 두 번이나 나왔다. 리틀 남진이라 불리는 김수찬은 임영웅을 지목했는데 참혹하게도 0점을 받았다. 경연한 노래 제목이 ‘울면서 후회하네’(주현미·1985)다. 평생 이 노래는 부르지 않을 것 같다. ‘그냥 그대로 있을 걸/당신 앞에 머뭇거린 내가 미워서/울면서 후회하네’.
300대 0은 나의 기억을 연무대 훈련소로 데려간다. 영점사격에서 진짜 0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탄환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실제 사격에선 달랐다. 인생은 그런 거다. 0점 맞다가 100점 맞다가 하는 거다. 노래에도 운명이 있고 가수에게도 운명이 있다. ‘운명을 따르는 게 행복이다(Happiness is answering your calling)’.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선 이렇게 번역했지만 음악동네의 해석은 좀 다르다. ‘행복은 너의 노래를 너답게 부르는 것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류지광의 신상명세를 보니 85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키 185㎝에 1985년생이다. 중3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잡지모델이 됐다. 그 후의 행적은 한마디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다. 2009 미스터코리아 우승에, 2010 미스터월드 탤런트 부문 1위, ‘슈퍼스타K3’(Mnet·2011)에선 톱24까지 올라갔다. 2012년 SBS 슈퍼모델선발대회에선 톱7에 올랐고 2015년 전도연 주연의 ‘협녀’에도 출연했다.
‘팬텀싱어2’(JTBC·2016)에 나와 “통편집 배우에서 팬텀싱어의 주역이 되고 싶은 류지광입니다”라고 소개한 걸 보면 영화의 기억은 쓰라렸던 모양이다. 16강까지 간 ‘팬텀싱어2’ 인터넷화면엔 ‘초저음(류지광)과 초고음(곽동현)의 만남’이란 자막이 떠 있다. 곡목은 ‘세이 섬싱’이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나 이제 널 포기하려 해(Say something/ I’m giving up on you)’.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제는 얼굴로 미스터 월드, 내일은 목소리로 미스터트롯이 되고 싶은 류지광입니다.” 다시 보니 완전체 제목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이다.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새는 노래한다’(박남수 ‘새’ 중).
제작진이 타이틀곡으로 남진의 ‘둥지’를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난날의 아픔은 잊어버려(중략) 이제 너는 혼자가 아니잖아/사랑하는 나 있잖아(중략) 현실일까 꿈일까 사실일까 아닐까/헷갈리고 서 있지마’.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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