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노년층 ‘단기알바’ 만들기에 年1조… 청년들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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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세금 쏟아 늘리는 노인 일자리

쓰레기 줍기·교통 안내같은
질 나쁜 일자리에 예산 투입
고령층 대거채용 ‘고용 착시’
부정 수급자 양산 등 부작용

“세금충” “노인충” 혐오 팽배
왜곡된 정책, 세대갈등 키워
“민간주도 고용 창출 유도해
세금 내는 일자리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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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대형 공공기관인 A사는 몇 년 전부터 만 60세 이상 노인들을 채용하고 있다. 근로 강도가 세지 않고, 하루 4시간씩만 근무하면 되는 데다 급여도 80만 원 이상이다 보니 어르신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높다. 지난해에도 2000명 모집에 4000명 가까운 인원이 몰렸다. 급여 지출에 따른 인건비 등을 합하면 이 같은 고령층 고용비로 연간 100억 원 정도의 비용이 투입된다.

#2. 70대 은퇴자인 B 씨는 거주지 인근 노인회에서 소개받은 경로당 환경 미화나 시설 관리 활동 등을 하고 월급 27만 원을 받아왔다. 건강이 악화한 B 씨는 요양병원에 장기로 입원하게 됐지만, 입원 뒤에도 계속 일하는 것처럼 속여 오다 결국 부정 수급자로 적발됐다.

20∼30대 청년층 취업난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정부 고용 정책이 상대적으로 만들기 손쉬운 노인 일자리 늘리기에 집중되면서 일자리 문제가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불어나는 노년층 일자리를 두고 젊은이들 사이에선 ‘노인충’ ‘세금충’ ‘틀딱충’(노인들이 틀니를 착용한 것을 빗댄 말) 같은 노인 혐오성 신조어가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실정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를 젊은층과 고령층이 나눠 갖는 모양새가 형성되면서 왜곡된 정부 정책이 연령대별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정부가 대량으로 쏟아내는 노인 일자리 상당 부분이 상대적으로 질이 낮아 정작 노인들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눈먼 돈’을 빼먹으려는 부당 행위마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어 세대 간 적대감만 키우고 실속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령층 일자리에 쏟아붓는 예산 ↑ = 문재인 대통령의 “고용 연장 검토” 발언 이후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난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정년 앞둔 한 사람 월급으로 젊은 사람 최소한 2∼3명은 고용할 수 있을 텐데’ ‘경제 죽여 청년 실업자 만들고 60대 이상은 세금으로 알바천국 만든다’ 같이 성난 청년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인 일자리는 이미 급격히 증가한 상태다. 전 정부 때인 2015∼2017년 11만 명이 늘어났지만, 이번 정부 들어서인 2017∼2019년은 18만8000명이 늘었다. 노인 일자리가 늘어난 만큼 여기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도 급증했다. 2017년 5232억 원에서 지난해 8220억 원으로 치솟았다. 올해는 처음으로 1조 원(1조1913억 원)을 돌파했다. 정부는 전년 대비 예산을 3783억 원 더 배정하고, 일자리 대상도 13만 명 늘려 올해 74만 명의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일부 노인 일자리 적용 대상을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에서 만 65세 이상으로 완화했다.

고령층 일자리 증가는 전체 취업자 수를 떠받치는 효과를 일부 냈다.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17년 전년 대비 9만8000명 증가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2배 이상으로 증가한 22만7000명이 늘었다. 65세 이상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989년 관련 통계 생성 후 최대치다. 정부가 돈을 투입한 만큼 노인을 위한 일자리가 늘어난 셈이다.

◇노인 혐오 ↑ 막상 일자리 질은 ↓ =문제는 노인들에 대한 지원이 집중된 사이 일자리 구하기에 실패해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젊은층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청년이 체감하는 청년층 확장실업률 기준)은 22.9%로 2015년 집계 이래 가장 높았다. 우리 경제의 허리인 40대의 경우 2017년 취업자가 5만 명 감소(전년 대비)했지만, 지난해에는 16만2000명이나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취업에 실패해 낙담한 청년층을 중심으로 노인들에 대한 반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가인권회가 2018년 발표한 ‘노인인권 종합보고서’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청·장년층(19∼64세) 500명 중 절반이 넘는 56.6%는 “노인 때문에 청년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더 큰 문제는 나랏돈을 들여 제공된 노인 일자리 상당수가 양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 달 평균 30시간 정도를 일하고 27만 원 정도를 받는 ‘공익형 일자리’(쓰레기 줍기나 교통 안내 등)의 경우 2017년 35만5000명(전체 노인 일자리의 69.1%)에서 2019년 54만3000명(73.4%)으로 늘었다. 2년 새 약 20만 명분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고 비중도 커졌다.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가 제대로 된 일자리라기보다는 단발성 현금 지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민간형 일자리는 같은 기간 10만7000명(20.8%)에서 13만 명(17.6%)으로 2만 명 조금 넘게 늘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만드는 공익형 등의 일자리와 달리 민간형은 실제 기업 수요에 따라 생겨나는 일자리로 식료품·공산품 제조, 카페 운영, 택배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임금도 공익형보다 높고 안정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질이 좋은 일자리로 평가받는다. 이에 더해 재원과 일자리가 늘다 보니 일은 안 하고 혜택만 쏙 빼가는 부정 수급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집계 결과 2017∼2019년 노인 일자리와 관련해 발생한 부정 수급은 2113건에 달한다. 민간 사업장에 취직하거나 해외에 나간 뒤에도 마치 정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것처럼 허위일지를 작성해 활동비만 챙긴 경우 등이다.

◇고용 지표 개선 착시만…복지 위해 필요하지만 균형 맞추고 민간이 주도해야 = 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노인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좀 더 튼튼히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헬리콥터에서 현금을 뿌려대듯 소득·재산 수준과 관계없이 용돈 벌이 수준의 일자리를 마구잡이로 공급할 게 아니라,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체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아울러 젊은층 고용 정책과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현재와 같은 재정 투입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민간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닌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 등도 대안으로 꼽힌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정치적 판단으로 재정을 단기 노인 일자리에 쏟아붓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들이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이에 따라 일자리를 늘려가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은 세금으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아니라 (월급을 받아) 세금을 낼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한다”며 “정부가 세금을 낼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닌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 정책을 이어갈 경우 세대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