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순발력이 만들어낸 ‘안심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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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비슷한 비극적 상황에 처하면서 나라별로 대처 방식과 극복 과정에서 국민적 특성이나 사회적 역량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방식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고 성과를 말하기에도 아직 이르지만, 우리 사회의 ‘위기에 대처하는 민간의 발 빠른 대응 능력’만큼은 자부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런 능력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국 호텔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통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이른바 ‘안심 숙소’입니다. 안심 숙소는 감염이 의심돼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해외 귀국자에게 아예 집을 내준 뒤, 가족이 집에서 나와 묵는 숙소를 말합니다. 안심 숙소로 지정된 호텔 요금은 정상가의 절반 이하입니다. 80%까지 깎아주는 곳도 있습니다. 가족 간 효과적인 격리 방법이자 투숙객 급감으로 위기 상황에 몰린 호텔의 영업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입니다.

안심 숙소 등장은 서울 여의도의 A 호텔에서 있었던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달 21일 미국에서 귀국해 공항에서 코로나19 감염검사를 한 유학생이 이 호텔에 묵었습니다. 부모가 거주하는 자택이 걸어서 몇 분 거리인데도 호텔에다 여장을 푼 것입니다. 유학생이 호텔 프런트 앞에서 줄곧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고, 조식을 룸서비스로 주문해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몸에 이상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집으로 가지 않았던 건 아마도 제 가족을 걱정해서였겠지요.

이튿날 유학생의 코로나19 감염 사실이 확인됐고 호텔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투숙 중인 모든 손님을 다른 호텔로 보내면서 숙박비를 받지 못한 건 물론이고, 다른 호텔 투숙요금까지 물어줘야 했습니다. 예정돼 있던 돌잔치는 물론이고 호텔 레스토랑의 예약을 취소하는데도 적잖은 손해가 났습니다. 호텔은 사흘 동안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아직도 자가격리 중입니다. 한 유학생과 가족의 무신경한 태도가 그러지 않아도 위기를 겪고 있는 호텔에 엄청난 손해를 끼친 셈입니다.

자가격리자에게 집을 내주고 가족은 호텔로 피신하는 안심 숙소는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기발한 정책입니다. 호텔의 요청과 지자체의 화답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안심 숙소는 서울 서초구·영등포구·구로구, 수원시, 남양주시, 익산시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정책이 발 빠르게 벤치마킹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순발력 있게 대응 방법을 찾아 실전에 적용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진 최고의 공동 자산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