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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0년 05월 08일(金)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의 배고픈 설움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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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 ‘보릿고개’

‘가요무대’(KBS 1TV)에서 36년 동안 방송 나간 횟수를 기준으로 애창가요 100곡을 뽑았다. 5위 안에 고개 이름이 둘 나온다.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2위 박재홍 ‘울고 넘는 박달재’ 중)과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5위 현인 ‘비 내리는 고모령’ 중). 1위는 백난아의 ‘찔레꽃’인데 여기에는 고개보다 약간 낮은 언덕이 나온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고개마다 이별이고 눈물인데 언덕은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인 게 눈에 띈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동네 근처에도 유명한 고개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멘 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 지도상으로 어딘지는 정확히 몰라도 그냥 눈물고개로 굳어진 이름. 이 고개를 살려낸 건 부동산 관계자가 아니다. 때마다 불러주는 가인(歌人)들 덕분에 한국인의 마음속에 불멸의 고개가 되었다. 최근엔 예명조차 가인(佳人)인 송가인이 무대에서 이 고개를 부활시켰다. ‘한 많은 미아리고개’로 많이 알고 있지만 원래 제목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다. 꽃단장이 아니라 슬퍼서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의 단장(斷腸)이다.

요즘 음악동네에서 뜨는 고개는 가수 진성(사진)의 ‘보릿고개’다. 제목만 듣고 보리밭 샛길로 걸어가는 낭만적 풍경을 떠올린다면 배고픈 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일 것이다. 조상님들은 아픔과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셨다. 가슴이 터지도록 서럽고 창자가 끊어지도록 애달팠던 시절을 보낸 까닭이리라.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면 뭐가 찢어지는 것 같으냐고 젊은이에게 물으니 옷이 찢어지는 거 아니냐고 답한다. 극한의 상상력을 동원해보라고 기회를 다시 준다. 목구멍이라는 답이 나온다. 목구멍이 아니라 똥구멍이라고 답해주니 두 번 놀란다. 가난한데 왜 항문이 찢어지냐는 의문점이 하나, 고상한(?) 입에서 나온 뜻밖의 속어 때문에 받은 충격의 여파가 다른 하나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예전에 들은 우화를 곁들여 전해준다. 똥개가 똥을 먹는데 귀한 개가 지나가다 보고 한마디 던진다. “야, 어떻게 똥을 먹어?” 돌아온 답이 애잔하다. “야, 밥 먹는데 왜 똥 얘기를 하냐?” 다르게 살면 다르게 보인다. ‘초근목피의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고서 가난의 설움을 어찌 짐작하랴.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진성 ‘보릿고개’ 중).

육십 고개에 오른 진성은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겸손이 몸에 배었다.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 고개만 넘으면 되겠지.” 초등학교도 제때 입학하지 못할 정도로 궁핍해 4학년 나이가 돼서야 학교 문턱을 처음 밟았다. 그러나 타고난 진성(眞聲)과 인성(人性)으로 학력의 벽쯤은 가볍게 뚫어버렸다. ‘돈이건만 값어치 약한/ 동전 같았던 내 과거/ 그 누가 알까’(진성 ‘동전인생’ 중).

과거는 지나간 걸까. 누군가는 과거를 묻고(問) 누군가는 과거를 묻는다(埋).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 (중략) 한때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해/ 긴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진성 ‘태클을 걸지 마’ 중).

어제는 오늘의 재료가 된다. 오늘은 내일의 재료가 된다. ‘눈물방울 삼키며/ 오늘을 위하여/ 모진 세월 나 여기 왔다/ 인생은 지금부터야’(진성 ‘동전인생’ 중). 생각을 바꾸면 삼 년고개도 백 년고개가 된다. 한 번 넘어지면 삼 년을 못 넘기지만 서른 번 넘어지면 구십 년도 버틸 수 있다. ‘세월 탓해서 무얼 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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