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작은 서점과 출판기금 절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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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문화부 차장

“3년 전 (국내 양대 출판 도매업체였던) 송인서적이 부도났을 때 도움받을 곳이 없었어요. 이번에도 달라진 게 없어요. 영세 중소 출판사, 동네 서점들은 죽어 나갑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출판계에 미친 영향을 취재하다 만난 한 출판사 대표의 푸념이다. 출판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선방 중인 것으로 전해지지만, 숫자 뒤에 있는 참담한 현실도 같이 봐 달라는 당부였다.

그의 말처럼 현장의 아우성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중소 오프라인 서점, 학교 앞 서점들이 난리였다. 등교가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다 보니 3월 개학 특수가 사라졌다. 학교 앞 서점의 3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70%까지 줄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역 사랑방 겸 지식 전파의 거점 역할을 해 온 동네 서점들의 타격도 크다. 출간 기념 낭독회나 독서 토론회 등 이들의 주요 마케팅 수단이었던 오프라인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된 데다 독자들의 온라인 쇼핑 의존이 더 커진 탓이다. 출판 매출의 대부분이 학습서와 일부 스테디셀러 문학, 에세이, 경제·경영서 등에 국한되면서 실험적인 책들을 출간해 온 1인 출판사 등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결국 출판과 유통 모두 몸집이 작은 영세 업체들이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그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버티는 힘’이 약한 영세 업체들의 위기를 그냥 시장 논리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작은 출판사와 작은 서점은 매출 등의 면에서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한국 출판계의 다양성을 유지해 주는 첨병이다. 이들이 무너지면 한국 출판 생태계 전체의 실험 정신이 약해지고, 궁극적으로는 다양성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출판계의 위기는 지식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출판계의 숙원이면서도 재원 대책과 관리 주체 등의 논란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출판문화진흥기금 설치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귀를 기울일 만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제를 석권한 데에는 영화발전기금을 비롯한 안정적 제작 지원 시스템과 투자가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멋진 수상 소감이 보여주듯, 봉 감독은 그 자체로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을 상징해 왔다.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으로 문화예술진흥기금(2020년 2892억8200만 원), 영화발전기금(1015억3500만 원), 지역신문발전기금(92억5200만 원), 언론진흥기금(227억9100만 원), 관광진흥개발기금(1조1687억1100만 원), 국민체육진흥기금(1조4778억6300만 원) 등 6개 기금이 운용되고 있으나 별도 출판 기금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맨부커상(한강 ‘채식주의자’)과 린드그렌상(백희나), 라가치상(김희경 ‘마음의 집’ 등) 등의 수상자가 나온 것은 기적에 가깝다.

정부는 지난 2017년 2월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출판문화산업이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핵심이자 콘텐츠의 원천”이라고 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그 약속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